시하누크 전 국왕 오는 2월 4일 화장

기사입력 : 2013년 01월 31일
훈센 총리는  노로돔 시하누크 전 국왕의 장례식이 왕궁에서 3개 월 간의 조문 기간이 끝나는  2월 4 일에 불교의식에 따라 화장될 것이라고 발표  했다. 시하누크 국왕의 시신은 2월 1일에 메루필드(Meru field)의 화장터로 옮겨서 3일간 안치됐다가 화장된다.

시하누크 전 국왕은 지병으로 지난 10월 15일 베이징에서 향년 90세로 별세했으며, 그의 시신은 진나해 10월 17일에 에어차이나(Air China) 여객기에 실려 프놈펜으로 돌아왔다. 일주일간의 애도기간 이후에 3개월간 왕궁에 안치되어 일반인 조문객의 방문을 받고 국왕의 업적을 기리고 나면 생전의 유언대로 불교의식에 따라 화장될 것이었다.

외할아버지인 시소와트 모니봉 왕에 이에 18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시하누크는 1941년부터 1955년까지 14년간 국왕을 지낸 데 이어 1993년부터 2004년까지 다시 국왕으로서 무려 70여 년이란 긴 세월 동안 캄보디아 를 통치했다. 특히 첫 번째 통치 기간에는 독립과 베트남전쟁, ‘킬링필드’로 알려진 크메르루주 정권의 학살 등 여러 사건까지 겹치며 캄보디아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었다.

두 차례의 국왕 즉위를 포함해 대통령, 총리, 국가수반, 망명지도자, 상왕 등을 거친 바 있다. 심지어는 작사, 작곡가로도 활동함은 물론, 영화제작에도 나서 직접 주연, 감독까지 맡은 영화도 십여 편에 달할 만큼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인물로 한때 기네스북에 가장 많은 직위를 가진 정치인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시하누크 전 국왕은 1941년부터 1955년까지 캄보디아를 통치했고, 1993년부터 2004년 10월 7일 아들인 노로돔 시하모니 현 국왕에게 양위를 결정하고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재집권했었다. 그는 1953년 캄보디아를 프랑스로부터 독립시킨 왕이었고 독립과 영토보전 그리고 민족의 화합과 단결의 아버지로 불렸다. 시하누크 전 국왕은 암, 당뇨, 고혈압 등의 다양한 질환을 앓았으며 숨질 때까지 수년 동안 베이징에서 치료를 받았었다.

그는 영욕이 뒤얽힌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 “비극의 주인공은 시하누크 나 자신이 아니라 캄보디아 인민이다”라는 말로 갈음한 적이 있다. 조국을 지키려고 했던 한 약소국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역량과 그 한계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그의 일생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였다.

캄보디아 정부는  노로돔 사하누크 전국왕의 화장후 약 500명의 수감자를 석방 또는 감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울러 캄보디아 법률에 따라, 수감자중 형기의 3분의 2 이상을 보냈거나 수감기간을 모범적으로 행동한 경우만이 이번 사면이나 감형에 대한 자격이 부여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2월 4일의 석방과 감형은 전 국왕의 화장의식에 의한 것이므로 훈센 총리가 특별히 나이가 많은 수감자, 질병이 있는 수감자 그리고 어린 아이가 있는 수감자들을 석방, 감형 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 편집실  박정연의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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