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술 권하는 사회

기사입력 : 2016년 08월 17일

프놈펜에 처음 오는 외국인이라면 몇 가지 색다른 풍경에 눈길이 갈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맥주 광고판이다. 식당이나 술집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지나다 보면 업소 앞 보도에 맥주 광고용 입간판이 줄 지어 늘어서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간선도로 양편에도 있고 상가 지역이나 주택가 근처에도 흔하다. 캄보디아에서 생산되는 세 개 맥주 회사 간판이 대부분이고 요즘에는 외국 맥주 회사 간판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업소 전면의 입간판뿐만 아니라 식당이나 술집 벽면이나 전면에도 술 광고 배너가 많이 붙어 있다. 시골에 가도 이런 풍경은 흔히 눈에 띈다.

왜 이렇게 맥주 광고판이 많을까? 캄보디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 맥주다. 다른 술에 비해 맥주 소비량이 월등히 많다. 그래서 그런지 큰 맥주 회사가 캄보디아에 3개나 있다. 이들 회사들은 자사 맥주를 알리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TV나 라디오 광고는 당연하고 각종 프로그램 협찬이나 이벤트를 벌여 고객의 관심을 끈다. 식당이나 술집을 하는 사람들이 맥주 회사에 신청하면 맥주 광고판 하단에 업소 상호를 넣어서 입간판을 세워 준다. 업소는 공짜로 간판을 세울 수 있고 간판세도 맥주 회사가 부담하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식당이나 술집뿐만 아니라 소형 마트나 구멍가게도 이런 간판을 주로 이용한다. 그래서 프놈펜, 아니 캄보디아 전체가 맥주 간판으로 뒤덮여 있다.

최근 3,4년 동안 프놈펜 시내에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난 술집이 KTV다.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가라오케를 뜻하는 말인데, 한국식으로 분류하자면 도우미가 있는 유흥 주점이다. 3,4층 높이의 대형 건물 전체를 가라오케로 쓰는 업소가 프놈펜 시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한 때는 무명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며 맥주를 마시는 대중적인 주점인 비어가든이 성업했지만 요즘은 KTV에 밀리는 추세다. 비어가든을 KTV로 간판을 바꿔 다는 집도 더러 있고 비어가든 자리에 건물을 올려 KTV 영업을 하는 곳도 많다. 이런 술집에는 양주도 있지만 가장 많이 소비되는 술은 단연 맥주다.

캄보디아에서 술 광고는 별로 규제를 안 받는 것 같다. 거리나 주택가 골목 어디서든지 흔히 눈에 띄는 것이 술 광고판이요 청소년들이 즐겨 보는 축구 중계나 킥복싱 중계 프로그램을 도배하다시피 하는 것도 술 광고다. 어디 그뿐인가. 초중고 학교 근방에도 주점이 있고 학원 건물 앞에서도 주점이 영업을 한다. 술꾼들이 많이 모이는 간이 주점이나 식당 등에 늦은 밤까지 어린아이들이 과일과 마른안주, 꽃을 팔러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은 그런 것을 이상하게 보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른이건 아이들이건 캄보디아 사람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 산다.

캄보디아에 꽤 살았는데도 길에서 술 먹고 비틀대는 사람이나 술주정뱅이를 본 적이 없다. 독하지 않은 맥주를, 그것도 맥주에 얼음을 넣어서 마시는 음주 습관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술집을 2차 3차로 옮겨 다니는 술 문화가 없고 과음이나 폭음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않나 생각된다. 더운 날씨와 주머니 사정도 한몫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국내 주류회사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외국의 각종 맥주가 쏟아져 들어와 갖은 방법으로 손님을 유혹한다. 오토바이나 스마트폰 같은 경품을 걸고 자사 맥주를 파는 판촉 행사는 수시로 있다. 맥주 소비량이 크게 늘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런데, 요즘 프놈펜 시내에서 음주 단속이 부쩍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단속은 해야 하겠지만 ‘술 권하는 사회’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