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호의 국립소아병원에서 드리는 편지] 네 번째 편지 ‘탈라세미아? 쭘응으 딸라세미!’

기사입력 : 2023년 12월 19일

서정호 칼럼 메인33

존경하고 사랑하는 캄보디아 교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랑합니다.

저희 병원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국립소아병원 혈액과 병동” 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네 번째 편지의 제목은 ‘탈라세미아? 쭘응으 딸라세미!’ 입니다.

캄보디아에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캄보디아는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캄보디아 사람들을 통해 캄보디아의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시엠립에서 일할 때 많은 분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셨지만 여전히 외로웠습니다.

그 때마다 저의 Boss 이셨던 Dr. Uy Chanthol 선생님(현재 시엠립 의사협회장님)은 “Are you OK?” 이렇게 물어봐 주셨습니다.

이 분은 심장 전문의이자 정신과 전문의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계십니다.

저는 이 분이 “Are you OK?” 물으실 때 특별한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시엠립 근무가 끝나고 프놈펜 러시안 병원(Khmer Soviet Friendship Hospital, 문띠뻳 로씨) 성인 암 병동에 오게 되었습니다.

시엠립과 달리 KOICA 와 협업한 적이 없는 이곳은 제게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과장님이신 Prof. Samnang 교수님은 제가 무슨 일을 하든 안 하든 별 말씀을 안 하시고 저를 멀리서 지켜봐 주셨습니다.

저는 이것을 무관심으로 여기고 섭섭했는데, 나중에는 이 분의 무관심이 외국인인 저에 대한 사랑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겸손 훈련’이었습니다.

때가 되자 썸낭 교수님은 KOICA 지원을 요청하시고  ‘러시안 병원 암병동 산소 설비 리모델링’이라는 좋은 아이템으로 현장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현재 직장인 국립소아 병원에 오게 된 것도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KOICA 와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러시안 병원, 국립소아병원 병원장님들을 초청하여 코로나 대응 물품 전달식을 가졌습니다.
이 때 국립소아병원 병원장님이 제게 소아 암병동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러시안 병원에서 한참 겸손 훈련을 받고 온 저에게 KOICA 와 긴밀한 협력을 하고 있는 국립소아병원은 최고의 직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저의 근무지인 암병동은 그다지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저는 소아과 의사가 아니었기에 새로이 소아과에 대해 겸손히 배워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캄보디아에 오기 전에 ‘탈라세미아, 영어로 Thalassemia’라는 독특한 병에 대해 들었습니다.

우리말로는 ‘지중해 빈혈’이라고도 합니다. (1923년 지중해 선원들에게 처음 발견되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이 병을 별로 볼 수 없는데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 아시아에는 많습니다.

이 병은 태어날 때부터 적혈구를 이루는 단백질(글로빈 사슬)에 이상이 생겨 적혈구 수명이 짧아지는 병입니다.

정상적인 적혈구가 부족하게 되어 빈혈이 생기고 숨이 차고 성장이 지연되게 됩니다.

결국 탈라세미아는 선천성 빈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빈혈은 대개 철분이 부족하거나 피를 흘리면 생깁니다.

하지만 탈라세미아는 부모로부터 받은 이상 유전자 때문에 빈혈이 생깁니다.

경증인 경우도 있지만 중증 탈라세미아는 평생 수혈을 받아야 하는 힘든 병입니다.

저희 병원에서 암병동 만큼이나 중증 환자가 많은 곳이 바로 혈액 병동입니다.

이곳에 입원한 아이들 중 대부분은 ‘지중해 빈혈’로 인해 매달 병원에 와서 수혈을 받습니다.

캄보디아 소아들 중 중증 빈혈의 원인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지중해 빈혈’이 먼저입니다.

저는 종양과에서 일하지만 혈액과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종양과와 달리 혈액과는 환자도 많고 의사도 많고 항상 갈 때마다 북적북적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여기는 뭐가 다른 거지?’

그런데 이 병동 과장님은 처음부터 제게 친절하게 잘 대해 주셨습니다.

쉽게 마음을 여시면서 저의 안부도 물으시고 언제나 웃는 얼굴이셨습니다.

혈액과 과장님의 협조로 매달 ‘힐링 콘서트’를 이곳 혈액 병동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제가 특별히 혈액과와 지중해 빈혈에 대해 소개드리는 이유는 저희 국립소아병원 혈액과 과장님(Prof. Chean Sophal)께서 한국에서 열린 ‘국제 대한혈액학회 학술대회’(ICKSH 2023)에서 ‘캄보디아의 탈라세미아 상황’에 대해 발표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이 분을 연자로 초청한 것을 봐도 이 분은 캄보디아의 소아 혈액학의 대가이십니다.
하지만 이 분의 발표를 보면 여전히 캄보디아에서는 진단 장비와 치료약의 부족, 반복적인 수혈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의 부족 등으로 치료에 어려움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분은 ‘캄보디아 탈라세미아 진단 치료 가이드 라인’을 만들기도 하시고 환우회를 조직하기도 하셨습니다.

이 분이 한국에 가신다고 해서 저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며 잘 다녀 오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달하였습니다.

이 분은 한국에 가셨을 때 한국 혈액학 교수님들과 학문적 교류를 나누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교수님과

지중해 빈혈은 캄보디아 사람들의 거의 절반이 유전자를 갖고 있을 정도로 흔하고 매년 2천명 정도 중증 환자가 생긴다고 합니다.

완치를 하기 위해서는 ‘골수 이식’ 만이 유일한 답인데 아직까지 캄보디아에서는 골수 이식이 불가능합니다.

중동의 부유한 나라들은 결혼 전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녀에게 지중해 빈혈이 생길 확률을 미리 예측해서 지중해 빈혈 발생을 미리 막기도 합니다.

올해부터 KOICA 지원으로 시작되는 ‘국립소아병원 역량강화 사업’을 통해 혈액과 병동에도 지원이 잘 이루어져서 나중에는 ‘골수 이식’을 하게 되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지중해 빈혈의 예방, 진단, 치료가 캄보디아 전국적으로 더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교민 여러분들께서도 관심 가져 주시길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오늘은 탈라세미아(지중해 빈혈)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혹시 빈혈약(철분제)을 먹어도 빈혈이 낫지 않는 아이나 어른이 있으면 제게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탈라세미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다음 번에는 ‘국립 소아 병원 신경과 병동- 뇌성마비’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국립 소아 병원이나 오늘 글 내용에 대한 문의가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캄보디아 KOICA 의사 서정호 올림 ( 011 944 511, yoyosuh77@ms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