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칼럼] 빠일린을 다녀와서

기사입력 : 2013년 03월 12일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버린 트렁크. 물 한잔 먹을 만한 곳도 보이지 않았던 척박함의 고장. 그리고 킬링필드의 악몽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만 같은 처절함이 서린 오지. 버림받고, 또 버림받고, 또 버림받은 자들이 마치 유령처럼 웅크리고 있다 다가오던 두려움의 땅 빠일린. 빠일린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었다.

그 빠일린을 다녀왔다. 길이 좋았다. 태국으로 줄이어 가는 트럭에는 박제가 된 카사바가 시집을 가고, 카사바를 말리는 농부들은 돈을 만지는 기쁨에 젖어 힘든 노동에도 힘들어 하지 않았다. 이렇게 빠일린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돈이 되는 희망의 땅”으로 변해 버렸다.

몇 년 전 영국의 타임스와 BBC 등의 해외통신원으로 활동했던 필립 쇼트가 쓴‘악몽의 해부‘(Anatomy of a Nightmare)가‘폴 포트 평전’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출간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수소문 끝에 대강의 줄거리를 읽어본 적이 있다. 그 때 저자 필립 쇼트는 킬링필드 비극이 잉태된 원인을 캄보디아의 독특한 문화와 사회 조건에서 찾는다.

캄보디아 공산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악인을 물리칠 선인의 화신으로 여겼다. 사랑과 슬픔 등 모든 감정은 떨쳐버려야 할 개인주의의 소산으로 보고 일부 지역에서 웃거나 노래하는 것조차 금지한 것은. 마치 소승불교에서 열반에 이르려면 속세의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고 한 것과 비슷했다. 폴 포트가 육체노동을 강조한 것도 육체노동이 프롤레타리아 의식을 연마하는 수단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란다.

비극의 씨앗은 크메르루주가 농민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던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전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농민혁명에는 도시에 대한 분노라는 특징이 들어 있다’고 지적한다. 프놈펜에 입성한 크메르루주에게 프놈펜의 ;타락상’은 혐오와 분노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도시민이 땅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개조해야 도시생활에서 묻은 오물을 씻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폴 포트는 낡은 사상이나 이를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혁명의 불길’속에 사라지고 나면 캄보디아가 더 강해지고 깨끗해져서 공산체제의 본보기로 다시 태어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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