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건축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

기사입력 : 2013년 03월 12일

delphi

신들의 왕 제우스가 세계의 중심이 어딘지 궁금하여 지구의 동쪽 끝과 서쪽 끝으로 독수리 두 마리를 날려 보내자, 지구를 한 바퀴 돌아 그리스 파르나소스 산 낭떠러지의 한 동굴에서 만났다. 세계의 배꼽(옴파로스)으로 인정받은 그곳에 신탁으로 유명한 델포이 신전이 세워졌다. 건축물에도 팔자가 있는 것이다. 그 지역 문화와 풍토를 비롯하여 부지 위치와 생김새, 주변 환경 등이 건축물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대로변 모퉁이 땅에는 으리번쩍한 금융사 사옥이나 백화점이, 이면도로에는 먹자골목 식 아기자기한 점포가, 저 푸른 초원 위에는 그림 같은 집이, 도시의 호젓한 강변으로는 러브호텔이 들어서기 십상이다. (창밖으로 흐르는 강물을 감상할 틈이나 있을까 만은…)

건축주의 취향 또한 건축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불후의 예술품이 그렇듯이 위대한 건축물 뒤에는 위대한 후원자가 있게 마련이다. 과거의 건축 후원자들은 왕족이나 교황 등 디자인 언어에 대한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었으나 대중시대로 접어들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산업화와 함께 든든한 후원자를 둔 장인이 빚은 건축예술은 쇠퇴하고, 자본주의의 거대한 이윤 창출을 위한 건물들이 도시를 메워갔다. 외피만 얄팍하게 치장한 상자(컨테이너)형 건물과 자연경관을 가리는 초고층 아파트가 병풍처럼 들어섰다. 자동차시대를 맞으면서 주차가 필수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주차효율이 좋을수록 입주자와 고객 유치가 수월해져 건물의 가치가 상승하니 어쩌랴. 얼마 전에 완공된 캄보디아 건설부 건물은 건축주(정부)의 오만을 드러낸 시대착오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대지를 꽉 채운 육중한 메스로 권위를 자랑하지만 시민을 위한 주차공간이 턱없이 모자라, 주차를 위해 우왕좌왕하는 민원인들 차량으로 일대가 아수라장이니 말이다.

세계문화유산인 앙코르 와트가 있는 시엠립은 차치하고라도, 정기적인 건축투어가 운영될 정도로 캄보디아에 격조 높은 건축이 많다. 프랑스 식민시대에 지어진 조형성이 풍부한 건물이 주를 이루지만 궁궐이나 사원, 개인빌라 등 아취 있는 건물도 흔히 볼 수 있다. 프놈펜은 오히려 최신 건물일수록 천편일률적이어서 “동양의 파리”로서 아름다운 감동을 주던 조화가 깨지는 듯해 아쉽다. 개발 열풍과 함께 빈민은 도시로 몰리는데, 정부의 인적 물적 인프라 구축은 굼뜨고 자본가들은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지으려들기 때문이리라.“문화적으로 성숙된 건축가가 저급한 건물을 일부러 흉내 내는 것으로 근대건축은 시작되었다”, 루이스 헬만의 비판처럼 이상적인 건물을 지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흥 개발국에서는 질보다 양에 치우치기 십상이다. 건축은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아무리 재료와 유통이 발달한 글로벌시대라지만 법제와 문화, 기술력에 있어서 그 나라의 역량을 벗어날 수 없으니, 건축도 팔자소관을 면하기 어려운가 보다.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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