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더 알아보기] 제52화 소수민족 짬(Cham)족의 흥망성쇠 역사

기사입력 : 2020년 11월 20일

전세계적으로 대략 80만명에 불과한 짬족은 주로 메콩강을 젖줄로 하는 깜뽕짬주 75%, 베트남 남부 20%가 거주한다. 태국에는 라마1세 통치기(1782-1809)에 베트남의 무차별 학살을 피해 이주한 세대가 4천명 있다. 말레이시아에는 크메르루즈 정권기(1975-1979) 종교박해로 대규모로 이주해서 형성된 교민사회가 빠르게 말레이족으로 동화되고 있다. 이처럼 짬족은 캄보디아와 베트남 남부의 수니파 무슬림사회의 핵심이라지만 강성했던 역사가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짓밟히고 유린당하며 오늘날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수정됨_52-02▲ 캄보디아의 짬족은 88.66%가 무슬림인 반면에 베트남 내륙의 짬족은 힌두교가 우세하다. 그밖에도 불교, 민간신앙, 기독교 등의 종교가 극소수로 분포하고 있다.

짬족은 몬족과 크메르족을 아우르는 오스트로아시아어족으로서 대략 5,000년전부터 동남아시아 본토에 거주했으며, 4,000년전에는 해상권을 장악하면서 번성했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후 2세기에 해안을 따라 항구 주변에 밀집해 살았던 짬족은 동남아시아 대륙의 수출입을 통제함으로써 해양무역을 통해 경제적으로 번영했다. 짬족의 국가는 쩜빠(Champa; ) 왕국으로 최고 전성기는 9세기와 10세기였지만, 1181년에 경쟁관계의 크메르제국 자야바르만 7세 왕에 의해서 복속되었다.

쩜빠 왕국 시조는 ‘뽀 나가 여인(Lady Po Nagar)’으로 베트남 칸호아(Khánh Hòa)성에 살던 빈농의 딸이었다. 그녀는 냐짱(Nha Trang)에서 백단향 나무(Sandalwood)를 잡고 표류하다가 중국 황실 왕자와 결혼하지만 고향이 그리워 다시 백단향 나무를 타고 자신의 두 아이와 함께 냐짱으로 돌아온다. 한편, 그녀를 쫓던 왕자 일행의 배는 신의 분노로 냐짱에 도착하자마자 바위가 되고 만다. 뽀 나가 여인은 쩜빠로 돌아와서 병자와 가난한 사람을 돕는 등 많은 선한 일을 했으며, 이러한 그녀를 기리는 사원도 오늘날 전하고 있다.

쩜빠 왕국도 이슬람화 되기 전에는 동남아시아의 다른 왕국처럼 초기사회부터 인도의 문화적, 제도적 요소를 도입하면서 인도화의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8세기부터 인도 구자라트(Gujarat) 등지의 무슬림들이 인도의 무역과 운송을 점차 통제하면서 이슬람 사상이 수세기 이전의 힌두교와 불교처럼 교역의 거대한 조류를 타고 쩜빠 왕국으로 유입됐다. 11세기에 짬족은 이슬람 사상을 채택했으며 관련 기록은 짬족 사원의 건축에서도 발견된다.

한편, 800년경부터 크메르제국의 급부상과 중국이남에서 밀려 내려온 베트남족으로 인해서 쩜빠 왕국의 국력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1471년에 베트남족과 전쟁에서는 심각한 타격을 입고 인명손실도 상당했으며 짬족 상당수가 노예로 전락했다. 이때 쩜빠 왕국 영토는 냐짱 근처의 소국으로 줄어들고 많은 짬족이 캄보디아로 유입됐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반도로 도망친 짬족은 15세기초에 말라카에 쩜빠 왕국 식민 도시를 세우고 수니파 이슬람교였던 말라카의 통치자와 연대했다. 1607년 내지 1676년 쩜빠 왕국의 한 왕이 무슬림으로 개종하면서 오늘날까지 짬족 사회의 우세한 특징이 되었으며 그때부터 아랍어 문자를 채택했다.

수정됨_52-03▲ 짬족 사람들을 접견하는 훈센 총리의 모습. 훈센 총리는 캄보디아의 종교적 관용의 태도를 선전하며 전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소수민족과 그들의 종교를 박해하는 현상을 꼬집는다.

또한, 짬족은 모계사회로 재산은 어머니에게 상속되었다. 이에 따라 1499년에 베트남인은 짬족 여성과 베트남 남성의 결혼을 금지했고, 수도 근처의 모든 짬족을 소탕하도록 지시하기까지 했다. 베트남의 무차별 공세에 따라 1693년에 쩜빠 왕국 영토는 완전히 베트남 영토로 통합됐다. 1960년이래 베트남전쟁으로 말레이시아 반도로 이주한 상당수의 짬족은 말레이 문화에 동화됐고, 17,8세기 중국 왕조 교체기에 짬족 땅과 캄보디아에 정착한 수천 명의 중국 난민들이 짬족 여성과 혼인하면서 자손들은 점차 중국화 됐다.

1960년대에 짬족은 베트남에서 독립 국가를 설립하려는 다양한 운동이 생겨났으나 1970년대 후반이후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에서는 이러한 짬족 분리주의 운동이나 정치 활동이 더이상 심각하지 않다. 특히나 캄보디아에서 크메르루즈 정권의 짬족 사회에 대한 박해는 큰 타격을 입혔다. 크메르루즈는 중국인, 태국인, 라오스인, 베트남인 및 짬족 모두를 박해했는데도 특히 짬족이 가장 많이 희생됐다고 기록된 바 있다./왕립프놈펜대학교 한국어학과 이영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