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예술 이야기] 여섯 째 이야기 – 젊어서 좋다. 젊어서 아쉽다

기사입력 : 2020년 10월 12일

류기룡 타이틀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도시로, 우리 역사속의 자부심과 아픔속에 있는 고선지 장군의 서역정벌로, 구소련의 군사적 요충지로 또한 지금은 문화와 동계스포츠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는 도시 알마티(Almaty). 그곳은 영상 40도가 넘는 기온과 웃음을 통한 삶의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끝없이 펼쳐진 넓은 대지와 함께 왠지 다른 듯하면서도 우리와 닮은 면이 참으로 많은 곳이라 정감이 갔던 곳이다. 필자는 십수년 전 그곳에서 개최된 [한국-카자흐스탄 수교 20주년기념행사 폐막식] 기획 연출을 위한 답사와 행사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알마티 아바이극장▲ 알마티 아바이극장(아버지극장) (구글검색)

출발 시점부터 계속해서 이어지는 여러 가지 작은 문제들(서울역-공항 열차를 타지 못한 일, 보딩 게이트 변경, 알마티 상공에서 대기, 입국 신고의 불편 등)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우리 일행보다 더 긴 시간을 기다렸으면서도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준 카자흐스탄 알마티 시청의 담당자 ‘아이누르’씨와 몇 몇 분들로 인해 모든 것이 해소가 되었다. 길지 않은 일정이라 무척 바쁜 움직임속에서도 그들의 수준 높은 문화를 접해보고자 틈새를 최대한 활용하여 알마타 국립 오페라&발레 극장을 찾았다. 마침 새로 건설된 수도의 “아스타나 국립 오페라-발레극장(Astana)”에서 순회공연을 왔었기에 그들을 통해 카자흐스탄 공연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었던 동화같은 이야기를 담은 이탈리아 발레를 관람할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추어 진행되는 공연인 만큼 지휘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발레공연에서 보통은 어느정도 연륜이 쌓인 중년의 지휘자를 모시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에서는 젊고 패기로 가득찬 신인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고, 오케스트라 단원조차도 몇몇을 제외하고는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주역, 조역, 군무 등 무용수들 조차도 젊디 젊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무대 전체가 젊은 활기와 생동감이 넘쳤다는 느낌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 약간은 들뜬듯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공연은 뭔가 모르게 조금씩 아쉬움을 남기면서 진행이 되기 시작했었다. 연주에서 독무에서, 듀엣에서, 군무에서…… 악기는 중요한 솔로부분에서 음정의 꺾임 현상이 발생하고, 무용수는 왠지 음악과 맞지 않는 장면들을 연출하며 어색함을 보태주고, 극의 전체를 이끌고 나가야 할 지휘자는 발레 지휘가 아니라 마치 교향곡을 지휘하듯이 음악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그 시작이 얼마나 어색했을지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 젊은 예술가들은 무대와 관객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폭발적인 흡입력과 집중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는데, 마치 예전 우리나라 고교야구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대역전 드라마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되었었다.

비록 실수는 있을지언정 그들은 무대를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않았고 관객들조차 주요장면이 마칠 때마다 박수로서 그들에게 힘을 보태주어 끝까지 진행될 수 있는 분위기를 쌓아나갔었다. 참으로 부러운 장면이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는 이렇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바로 그 시간 그 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감동이라는 뜻이다. 이 공연을 기억에 떠올리면서 필자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젊은 지휘자, 연주자, 무용수 그리고 젊은 관객층들을 보면서 ‘이 나라의 공연문화는 <앞으로>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가 있겠구나’라고 말이다. 프론티어(개척자) 정신이라고 말해야 할까? 어떻게 국립오페라-발레극장에서 순회공연을 하는데 저렇게 젊은 아티스트들로만 구성하여 진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 상식에서는 신구의 조화를 이루어야지만 균형을 잡을 수 있고 다음 세대로의 발전이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들은 과감하게 그 모든 것을 뒤집어 버렸던 것이다. 무모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이날 공연을 보면서 가슴 뿌듯함과 도전이라는 느낌의 단어를 생각했다.

아시나요?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던 작품이 관객들에게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들고 내용에 빠져들게 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필자는 그날 그 자리에서 이런 느낌을 가지며 이곳에서의 경험들을 떠올려 보았다.

#IMG_3323▲ 바리톤 Narath Destiny가 캄보디아 차세대 음악인을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한 <We are back> 음악회에서 슈만의 <봉헌>을 열창하고 있다(사진 문다슬)

지난 8월에 이어 10월22일 WE ARE BACK 두번째 공연을 캄보디아의 젊은 성악가 두명과 한국인 선생님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가게 되는데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클래식의 불모지에서 오페라와는 전혀 관계가 없던 학생이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시작한 성악 그리고 4년의 시간이 지나 졸업하고 첫 무대에서 만나는 관객을 향해 이들은 어떤 삶의 감동을 전달하고자 할까! 과연 떨지않고 무사히 끝까지 노래를 부를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염려와 걱정보다는 이들은 젊고 시작하는 예술가들이다, 비록 실수가 있을지라도 이들을 통해 이곳 캄보디아에 성악의 씨앗이 뿌려지고 관객이라는 열매가 거두어 진다면 이것은 멋있는 예술의 현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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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룡 교수

경북대, 러시아국립차이코프스키음악원(석·박사)
캄보디아 왕립예술대학 교수

성악가, 합창지휘자, 콘서트 프로듀서
NGO활동가로 동남아, 한국, 유럽에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