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더 알아보기] 제44화 왕실의 권위를 강조하는 캄보디아 화폐

기사입력 : 2020년 06월 26일

캄보디아에서는 지역에 따라서 다양한 화폐를 통용할 수 있는 편이다. 국경지역에 따라서는 인접국의 화폐도 함께 사용하고 심지어 한국인이 많은 관광지에서는 한국의 원화도 취급할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미국 달러의 통용은 모든 곳에서 과히 대세이기 때문에 자국 화폐인 리엘화의 존재는 깡그리 무시되는 실정이다. 그래서 캄보디아 정부로서는 리엘화를 적극적으로 시장에 유통시키려고 다양한 정책으로 방어하지만 외국인의 체감으로는 여전히 리엘화는 달러화의 부수적인 화폐로 취급된다.

2020년02월28일자 미화 1달러는 팔 때 4080리엘, 살 때 4095리엘이다. 보통 달러화로 가격이 책정된 슈퍼마켓이나 카페는 손님의 거스름돈을 정산할 때 일괄 4100리엘로 계산하고, 재래시장이나 노점식당은 4000리엘로 계산한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아낄 심산이라면 4100리엘로 계산하는 곳에서는 반드시 달러화로 결제하고, 재래시장에서는 리엘화로 거래하면 된다. 그밖에도 택시요금이나 공공서비스 요금, 각종 세금 등은 모두 리엘화로 가격을 표시하니까 거액의 리엘화를 제시하는 편이 이익이다.

현행 리엘화 지폐는 100, 500, 1000, 2000, 5000, 10000, 20000, 50000, 100000의 9종이다. 그런데 지폐들은 액수마다 한 종류만 있지 않고 여러 도안이 정신없이 다양하다. 국왕의 탄생일 또는 독립기념일 등 특별한 기념일마다 새로운 도안으로 지폐를 찍어내서 함께 통용하기 때문이다. 도안의 주요 모델은 왕실과 고고학적 유적지 또는 불교나 힌두교적인 조각상 등이다. 그런데 최근 도안에서는 역사적인 활동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이나 국제적인 원조로 설립된 건축물도 등장한다.

수정됨_44-5▲ 시하누크 선왕의 중년기가 그려진 5,000 리엘 지폐

요즘 유통되는 지폐들의 앞면에는 현 국왕과 선왕 및 왕대비가 종교적 조각상 등과 함께 등장한다. 먼저 시하누크 선왕은 백리엘에서 승복을 입은 유년기, 천리엘에서 왕실 복장의 청년기, 5천리엘에서 베레모를 쓴 중년기, 2천리엘부터 5만리엘까지는 양복을 입은 노년기를 볼 수 있다. 5백리엘과 2만리엘에서는 현재의 시하모니 국왕을 볼 수 있고 10만리엘에서는 시하누크 선왕과 모니니엇 대비가 함께 나온다. 그밖에 배경이미지로는 힌두교의 뱀신(Naga) 조각상과 부처의 가부좌상, 왕실문장 등이 함께 그려져 있다.

noname01▲ 5,000리엘 지폐 뒷면에 그려진 자야바르만 7세의 깜뽕끄데이 다리

지폐들의 뒷면에는 캄보디아의 고고학적 유적지를 중심으로 대표적인 유물이 함께 그려져 있다. 지폐의 낮은 단위부터 차례로 열거하면, 프놈펜의 실버파고다, 메콩강의 일본다리, 프놈펜 왕궁, 프랑스 식민지 치하 독립군, 씨엠립주에 소재한 자야바르만7세의 깜뽕끄데이 다리, 왕궁 앞 짝도목강에서 펼치는 배경기, 앙코르톰 사원, 씨엠립 바꽁사원, 현 국왕의 대관식 장면이 있다. 그밖에 부처의 가부좌상, 가루다 신상, 독립기념탑, 바이욘사원 부조 및 사면상, 바꽁사원의 코끼리 조각상, 쁘레아칸사원의 가루다 부조를 함께 볼 수 있다.

용도면에서 백리엘의 가치는 참으로 하찮게 대접받기 일쑤라서 찢겨서 길바닥에 버려지거나 학생들의 하트모양 종이접기로 쓰인다. 다만 사원을 방문할 때는 백리엘짜리 돈다발을 구입해서 들어서면 보시하는 마음을 든든히 낼 수도 있다. 즉, 계단마다 손 벌리는 빈자들에게 한 장씩 기부하거나 불교적인 행사에서 사원의 여기저기 마련된 시주단지에 보시하면 된다. 그 밖의 생활에서는 천리엘 단위에서 주차장 도우미에게 팁을 지급하는 용도로 자전거나 오토바이 주행자라면 1천리엘, 자동차라면 2천리엘 정도씩은 소소하게 보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정됨_44-8▲ 50,000리엘의 고액권 지폐를 사용하는 사람은 대부분 공무원이라는 인식이 있다.

보통 공무 종사자들은 월급을 리엘화로 지급받는다. 그래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상점이나 가게에서 5만리엘짜리 고액권 지폐를 내미는 손님은 대부분 공무원이라는 인식도 있다. 예를 들면 왕립프놈펜대학교 현지인 정규 교수진은 공무원으로서의 리엘화로 월급을 받고 강의를 하는 경우에는 추가적으로 강의료를 지급받는다. 그런데 이때 공무원 월급보다 더 상당할 수 있는 강의료는 달러화로 지급된다. 이렇듯이 정부 조직도 자국 화폐와 달러화를 혼용하고 있는 입장이라서 리엘화의 경쟁력이나 위상은 계속 미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왕립프놈펜대학교 한국어학과 이영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