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킬링필드’ 40년…’더딘’ 학살자 단죄

기사입력 : 2015년 04월 23일

“처음엔 주민들이 깃발을 흔들며 환영했어요. 죽음이 다가올지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지요.” 츠훙 콩(71) 씨는 40년 전 폴 포트가 이끈 게릴라단체 크메르루주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을 함락한 날을 떠올리며 AFP 통신에 15일 이같이 말했다. 부패한 친미 론놀 정권이 크메르루주에 의해 무너진 1975년 4월 17일은 내전에 지친 캄보디아 국민에게 기대와 달리 ‘킬링필드’로 알려진 대학살의 공포정치가 시작된 날이었다.

농촌 출신으로 구성된 크메르루주 정권은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내세우며 도시 주민과 지식인들을 도시 밖으로 내쫓으며 처형하거나 굶어 죽게 했다. 4년 가까이 되는 크메르루주 집권 기간에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4분의 1가량인 170만∼22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교사였던 츠훙 콩 씨도 16명의 친척을 잃었다. 그가 다니던 학교는 투올슬렝(일명 S-21) 수용소로 바뀌어 고문과 처형으로 악명을 떨쳤다.

1979년 베트남군의 지원을 받는 훈센 현 총리가 크메르루주 정권을 몰아내면서 킬링필드는 막을 내렸다. 크메르루주 정권에 대한 단죄 작업은 2003년에야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가 킬링필드의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국제 재판을 열기로 합의하면서 첫발을 내디뎠다.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는 캄보디아 정부의 간섭과 재판관의 잇단 사임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핵심 전범인 누온 체아 당시 공산당 부서기장과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에 대해 작년 8월 각각 종신형을 선고했다.

크메르루주 정권의 1인자 폴 포트는 1998년 숨졌다. 일부 전범이 고령으로 사망한 가운데 전범재판소가 지난 3월 2명을 추가로 기소했지만, 훈센 총리는 추가 기소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훈센 총리가 한때 크메르루주 조직에서 활동한 전력 때문에 과거사 청산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17일 크메르루주 정권 당시 희생자들의 유골이 안치된 프놈펜 외곽에서 추모 행사가 열리지만, 전범에 대한 단죄가 언제 마무리될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