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소망한다, 금지된 것을

기사입력 : 2012년 10월 08일

인류가 돼지고기를 처음 먹게 된 이야기가 흥미롭다. 먼 옛날 중국 촌가의 한  아이가 불장난을 하다 오두막집을 홀랑 태웠는데 어디선가 침이 줄줄 샐 정도로 구수한 냄새가 난다. 수상쩍은 곳을 손가락으로 찔러보았다가 “앗, 뜨거!”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간 순간, 그 맛에 놀라자빠지고 만다. 기르던 새끼 돼지가 화마에 통바비큐가 됐던 것이다. 그 이후 그 저항할 수 없는 맛에 대한 소문이 들불처럼 번져 인류가 가장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마빈 해리스는 <문화의 수수께끼>에, 이 맛좋은 친구가 중동지역에서 금기가 된 배경을 수록하고 있다. 돼지는 인간과 같은 음식을 먹어치우고 몸에 열이 많아 물 또한 많이 소비하는 동물인지라 음식과 물이 귀한 사막에서는 사치품이었다. 돈육품귀를 염려한 상류층에서 대중을 못 먹게 할 방편으로 종교적 금기로 못 박았다. 상식을 벗어난 금기의 배후에는 음모가 숨어있기 십상인 것이다.
 
언제부턴가 뒷담화를 금기시하는 듯하다. 점잔을 빼는 축에서는 프놈펜 한인사회가 좁아 “뉘댁은 집에서 에덴동산 복장으로 지낸다더라.”(다들 그러시죠?) 속속들이 꿸 정도니 조신할 것을 충고한다. 우리가 알아봤다시피 이 금기 또한 뒤가 구린 권력자의 농간일 가능성이 크다. 유언비어 유포죄야말로 모든 독재자들이 애용하는 비판세력 탄압수단이 아니던가. 음해와 모함을 할 세력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한 우리같이 힘없는 갑남을녀를 주눅 들게 하는 악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디에나 말을 확대재생산하여 옮기는 얼치기가 있게 마련이나 “적을 한 사람도 만들지 못한 사람은 친구도 만들 수 없다”는 금언도 있듯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어차피 인간은 관계덩어리에 불과한지라 주변사람들의 얘기가 화제에 오를 수밖에 없다. 한 정신과 의사는 뒷담화를 “압력솥의 김 빼는 기능”으로 설명한다. 뜻 맞는 사람과 뒷담화는 생활의 활력을 넘어 일상의 탈출구이자 스트레스의 치유책이 된다는 것이다. 마음 붙일 곳도 말벗도 귀한 타국살이, 가냘픈 연줄에 의지해 어렵사리 모인 자리에서 오래 억누른 회포를 풀어놓는 들뜬 입술을 보노라면, ‘아, 저 여인(사나이)도 나처럼 외로웠구나.’ 싶어진다. 끈끈한 가족애로도 채울 수 없는 동시대인끼리의 느낌을 공유하는 것에 대한 굶주림, 우정의 기갈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작열하는 열대의 태양과 프놈펜의 청정한 하늘, 더위에 무심해 보이는 거리의 사람들, 에어컨이 시원스레 돌아가는 아늑한 실내, 금방 지은 밥과 배추 겉절이, 달콤한 열대과일, 낯익은 얼굴들의 익살, 허튼소리, 역성들기, 염장지르기, 지키지 못할 장밋빛 결의… 아, 나는 이런 것들과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련다. 우리는 그 이해관계 없는 소탈한 대화에서 비로소 노스탤지어를 잊을 수 있지 않던가. (그러고 보니 우리 한인사회에도 힐링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 )

댓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