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디 아더 맨 (The other man)

기사입력 : 2012년 09월 25일

 

‘디 아더 맨’이라는 영화가 있다. 아내와 사별 후 상심이 깊은 한 중년남자가 우연히 아내의 컴퓨터에서 잠겨있는 폴더 “LOVE”를 발견한다. 결혼 25년 동안 한 줌 의혹을 품어본 적 없었던 아내, 컴퓨터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열어보지 않고 배길 남편이 그리 흔하랴. 폴더 안에는 숨겨진 남자와의 뜨거운 역사가 살뜰하게 저장되어있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서 소녀는 소년의 흔적이 배어있는 옷과 함께 묻어달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아무래도 나는 컴퓨터와 함께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저승 싸나이들하고만 연애하는 엽기적인 남성편력을 들키기 싫은 까닭이다. 찰스 램, 괴테, 스탕달…폴더엔 죽은 남자들에 관한 파일뿐이니.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죽은 아내에 대한 망집으로 끝내 연적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그 남자는 겉만 번지르르한 한량이지만 여인의 심지를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다. “본질에 도달해서 그것을 끄집어내는…사물의 심장 같은 거죠. 당신은 사물의 껍데기만 보는 군요.” 모든 여인에게서 특별함을 이끌어내는 사랑의 예술가다운 멘트. 시지근한 남편의 사랑과 달리 자기변호 따위가 필요 없는 열정을 보게 된다. 어쩐 일인지 그 순간 죽은 아내에 대한 미망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되고 그녀의 ‘다른 남자’에 대한 예우를 아끼지 않는다. 마음을 울리는 사랑이 으레 그렇듯이.

캄보디아에서 발생하는 원색적인 치정살인에 대한 소식을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된다.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 내가 선호하는 가장 안전한 짝사랑에서부터, 낭만적 사랑, 우애적 사랑, 본능적 사랑… 이 느른한 나라에 생각보다 불륜도 많고, 황산투척이나 흉기난자 등과 같이 질투의 표현 또한 극단적인 것으로 보아 관능적 사랑이 제법 흔한 모양이다. 사랑을 치부나 유희의 수단쯤으로 여기는 돈독이 오른 졸렬한 자본사회에 비하면 그 무분별한 순정과 아찔한 로맨스가 부럽기도 하지만, 어쩐지 으스스하다.

스탕달은 아내와 딸들의 정절을 지키게 하는 한 방편을 제시한 바 있다. 지성과 교양의 함양이다. 무지한 여성은 전적으로 본능에 이끌리기 십상이나, 여자가 지혜로워질수록 웬만한 남자는 고작해야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그저 그런 머슴 정도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세기의 정력가들은 다다익선을 부르짖지만, 나 같은 평범한 여자는 신실한 사랑 하나로도 충분하다. 무뢰한이라면 한 트럭으로 와도 사절이니까.(통쾌! 이런 맛에 글을 씁니다. 하하…) 오스카 와일드에 의하면 여자들에게 있어 사랑은 존경하는 마음과 함께 깃든다고 한다. 후대에 우수한 유전자를 물려주고자하는 게 세상 모든 암컷의 본능이라는 과학자들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다. 어쩔 수 없이 고리타분해졌지만, 그 존경의 둑이 무너지면 ‘The other man’ 에게 눈을 돌리게 된다고나 할까./ 나 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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