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가난에 대해서

기사입력 : 2011년 11월 07일

‘가난은 생활이 좀 남루하다’고 하는 서정주의 말은 가난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의 멋진 시적인 구라입니다. 무소유를 말하는 법정 스님의 말도 가난하고는 거리가 먼, 기본적인 것을 소유한 사람들의 말이죠. 그리고 법정스님이야 가정이 없으니까 가난한 아내의 끼니 걱정도, 돈이 없어 기죽은 아이들의 마음도 그리고 돈이 없어 학교도 못 가고 병이 나도 그냥 파스 쪼가리만 붙여야 되는 사람들의 질식할 것 같은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이겠지요. 
 
더구나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말도 가관입니다. 
이것은 정말 먹물이나 든 사람들이, 남보다 더 잘 살지 못하는 것을 말로 자위하는 샌님 같은 소리일 것입니다. 정말 자신들이 한번 모든 것을 다 잃고, 어디 가서 때 꺼리 하나도 해결할 수 없는 가난의 극치를 경험한다면 아무리 찢어진 입이라도 그런 소리는 나오지 못할 것이며, 그때가 되면 가난이 무엇인지 그들이 왜 가난 때문에 생을 포기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물질적 가난에 치를 떠는 사람은 정신적 가난, 영적 가난 같은 호사스런 소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물질적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정신적 풍요를 느끼는 사람은 진짜 가난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죽을 것 같은 가난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아마 그도 좀 더 가난의 진도가 나가면 영적 가난이나 파탄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침 새벽시장에 나가보면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고물을 찾는 아이도 있고 먹을 것을 찾는 아이도 있습니다. 너무 안쓰러워 조금 돈을 주면 바로 앞에서 무럭무럭 김이 나는 밥을 팔지만 거의 대부분 사먹지 않습니다. 왜 안 사먹느냐고 물으면 집에서 엄마와 밥해 먹을 쌀을 사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정신적으로는 아주 건강한 것이죠.
 
그러나 좀 더 큰 아이들은 좀 다릅니다. 본드를 사서 흡입하려는 것이죠. 
이제 이 수준이 정신적 파탄에 이르는 상태입니다. 왜 그러냐고 하면 너무나 힘이 들고 지쳐서 이제는 이 재미도 없으면 살수도 없을 것 같다고 합니다. 나는 그 아이들을 이해합니다. 가난에 지쳐 보여지는 삶이 너무나 선명해서 그 아이들은 그렇게도 어린 나이에 인생의 절망을 알아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자신의 손으로 선택할 수 있는 피난처를 찾아 간 것입니다. 너무나 어이없고 서글픈 비극이죠. 여자아이들은 너무나도 손쉽게 매춘을 배워 버립니다. 너무나 절망적인 상태에 처해버리면, 그 지독한 서러움을 잊기 위해 그냥 본드를 마시고 마약을 나눠 피고, 이 돈과는 무관하게 뒹구는 것이죠. 잠시를 잊으려고요. 그리고 조금 더 몸이 커지면 아주 쉽게 엄마에게 쌀을 사 가지고 갈 재주를 알아 버리는 겁니다.
 
가난이란 이런 것이죠.
예전에 베트남에서 온 시골처녀들이 캄보디아에는 참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생계가 막연한 부모, 버려져 있는 동생들을 그냥 눈뜨고 볼 수가 없어서 자신이 몸을 팔기로 하고 단 돈 200불에 팔려 온 처녀들이었습니다. 인신매매하고는 다릅니다. 3년 혹은 4년정도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정말 아무 제약도 없이 풀어주는 자의적 계약이니까요.
 
처녀들은 단단하게 마음먹고 돈을 벌어 집으로 부치고, 돌아가 고향에 자그마한 가게를 내고 할 생각으로 살아갑니다만, 때로는 그 중에는 에이즈에 걸려 몸을 망친 처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처자들이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슬피 울다가 한을 안고 메콩강에 몸을 던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참 가난이란 이렇게도 서러운 비극입니다.
어제 베트남에서 팔려왔다가 너무 못 먹어서 빈혈이 되고 거기다가 폐병까지.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하루에 마약 한 모금의 망각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그러나 아이는 무려 다섯이나 달린 서러운 과부의 인생을 만났습니다. 손을 잡기도 무서운, 나무뿌리처럼 말라버린 손에 10불을 쥐어주고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이런 사람까지 만나 이런 눈물을 흘려야 하나하고 오랫동안 강물을 바라보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외면하려는 마음 – 죄악입니다. 나도 죄인입니다. 아닙니다. 죄인, 괴수중의 괴수일 것입니다. / 정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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