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어버이날, 어머니에 대한 소고

기사입력 : 2013년 05월 07일

어머니

“어머니 부고를 여태 받지 못했다면 어머니는 돌아가신 것일까? 아닐 테지?” 작년에 어머니를 여읜 남편의 말에 해외살이 하는 사람의 피붙이에 대한 정서가 그대로 녹아있다. “잊히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는 말은 대단한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이겠지만 돌아가신 후까지 계속되는 “어머니 역할”에도 어울리는 듯하다. 몸이 쇠잔해지신 후로 하늘 길을 오가기도 수월찮아지고 안부도 건너 듣게 되었는지라 친정 모친 또한 기억 속에 존재하시는 거나 마찬가지다. 세상살이 탁탁하고 서러운 날에 “엄마…”, 무심한 딸년이 최후의 보루로 불러낼 때나 고목 같은 모습을 드러내시니. <그래도 죽을 둥 살 둥 하던 때가 좋았지!>하시던 말씀이 맞아떨어지면 어쩌나 싶을 때도 있고, <이 노릇을 어째, 귀신은 뭐 먹고 산다니?>, <죽으면 썩어질 몸땡이, 아껴서 뭐하련?>…, 살가운 말씀도 많으셨건만 자랄 적 듣던 지청구들에서 육친의 정이 더 느껴진다.

사회학자 필립 페셀에 따르면, 여성에겐 네 가지 타입이 있다. 살림과 육아를 중요시하는 어머니형, 위대한 연애를 꿈꾸는 애인형, 정치적 권력을 추구하는 전사형, 예술이나 사회사업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형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네 가지 성향을 어느 정도씩 타고 난다지만, 많은 여자들은 어머니형 쪽으로 기울 것이나 여자로서의 행복은 역시 멋진 유혹자를 만나는 일임을 감안할 때 내심 애인형을 꿈꿀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어쨌든 어머니형과는 거리가 있다. 자신을 희생하고 주변을 돌보는 모성애보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정신을 뺏기는 자기애가 강한 기질이기 때문이다. 모전여전일 터인데 우리엄마는 단연코 어머니형이라는 데 한 번도 의문을 제기해 본 적이 없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완벽한 여자란 어머니이자 애인이자 전사이자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조화롭게 꾸리는 여인이라고 하는데, 바야흐로 세상은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모양이다. 요즘 균형 잡힌 몸매로 폼 나게 데이트를 즐기는 섹시한 할머니(?)들이나 남편에게 살림을 맡기고 출근하는 당찬 여장부들의 모습이 심심찮은 것이, 나이 불문 애인 같은 아내, 친구 같은 엄마 등, 매력적인 여인상의 삶이 흔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전업주부에 대한 대접은 애인형, 전사형, 선생님형에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여자는 가정에서 의무를 다하는 대가로 가족의 사랑을 상실한다.”는 러셀의 예리한 지적도 있듯이 가족을 위해 악역과 굳은 일을 마다않고 헌신하면 할수록 억척 아줌마에 잔소리꾼 마귀할멈으로 홀대받기도 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만 쳐주는 세상이라지만 값어치로 따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어머니로서 아내로서의 희생이나 정성 같은 것들도 그 중 일부가 아닐까. 그런 사실을 간과하는 순간 사회는 치매 노모에게 폭행을 가하는 야만으로 추락하는 것이 아닐까. (어버이날 인데 어쩌다 보니 어머니 얘기만 했다. 어머니들도 때로는 이기적일 필요가 있으므로…)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