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스마트폰 세상

기사입력 : 2013년 04월 24일

스마트폰1타액이나 정액과 같은 일체의 체액을 교환하는 사랑행위가 가상현실에서만 허용되는 공상과학영화를 본 적이 있다. 자유분방한 성생활로 인해 에이즈보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창궐해 외계인과 대적해야 할 인간이 멸종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의 테크닉이 어찌나 발달했던지, 아무리 이지적인 여자라도 “연애 앱” 에 접속하면 결국 백치 아다다의 아득한 표정을 짓게 된다. 꿈의 세계에는 성병도 없고 스캔들도 없을뿐더러 누구나 전지전능하지 않던가. 인터넷 상에서 불가능한 일이 거의 없어진 요즘, 심심찮은 범지구적 신종플루의 출몰도 그렇고, 버추얼 리얼리티 세상이 그리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닐 듯싶다.

언젠가 집으로 싱싱한 낙지가 배달되어 왔다. 얼씨구나 하던 차에 저녁에 쳐들어갈 터이니 “연포탕”을 부탁한다는 지인들의 통보가 날아들었다. 연. 포. 탕. 그런 요리도 있나?, 연발탄이라도 맞은 사람마냥 머릿속이 하얘졌다. 부랴사랴 낙지들이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는 부엌으로 달려간 게 아니라 컴퓨터 앞으로 내달았다. 우리시대 새로운 나침반인 인터넷 신전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서다. 연포탕, 검색 시작. 연달아 포를 탕하고 쏘는 행위, 연포에 있는 목욕탕, 낙지의 주성분 타우린, 타우린은 가미가제 특공대의 흥분제, 당신은 흥분이 제대로 되나요?, 39세 이상만 입장 가, 급한 사람만 오세요… 음침한 골짜기에서 헤매다보니 해는 벌써 서산 너머로 지고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누리꾼만 되면 어찌 그리 시간이 빠르게 가는지, 음식이 타는지 도끼자루가 썩는지, 신선노름이 따로 없다.

머지않아 캄보디아에도 사이버 시대가 도래 할 것 같다. 최근 들어 캄보디아 인터넷 업체가 늘면서 비용이 저렴해지고 서비스 질도 좋아져 사용자가 2010년 32만 명에서 270만 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프놈펜에 와이파이가 안 되는 커피숍이 거의 없고 어디나 붐비는데도 실내는 조용하다. 손가락이 아닌 육성으로 대화하는 사람이 드문 탓이다. 커피숍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축은 우리 같은 원시인 밖에 없다. 연인처럼 보이는 커플들도 마주 앉아 각자의 모니터만 들여다 볼 정도니.

미래사회의 인류생활은 스마트폰에 의해 규정될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이 더욱 스마트해져 사이버 세상이 풍요로워질수록 인간은 더욱 외롭고 고독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모르긴 해도 외계인이 쳐들어온다면 지구인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휴대폰이라고 단정할 것 같다. 하나같이 지니고 다니며 먹여주고(충전), 입혀주고(커버), 하루 종일 보고 또 보며 요리조리 어루만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신조어가 뭐냐 물을 필요도, 어르신들께 전통요리 레시피에 대해 여쭐 필요도 없다. 수선을 떨며 누군가를 만나러 나설 필요도, 가족들과 섞여 입맛에 맞지 않은 TV 프로를 볼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이 있으니까. 그러고도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