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열대 비너스의 꿈

기사입력 : 2013년 02월 28일

비너스꿈
혹자는 넥타이와 브래지어는 발명되지 말았어야 할 발명품이라고 한다. 신통한 기능도 없으면서 남녀의 몸을 옥죄기 때문이다. 일찍이 현자들은 세상물정 모르는 열정가나 예술가들이 쓸데없는(?) 짓을 벌이지 않는다면 사회발전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현실성과 리스크를 계산하지 않는 부류가 저지르는 시행착오의 부산물이 소비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창업 폐업이 이어지는 불경기에도 간판가게는 성시를 맞듯, 누군가의 실패로 득을 보는 이도 있는지라 넉넉한 마음으로 보자면 세상에 완전히 무가치한 일은 없으리라. 모르긴 해도 캄보디아 경제지표 상승에 이곳 실상을 모르고 뛰어든 해외투자자들의 손실도 기여했을 터이다. 작금의 불황이 길어지는 이유로, 청년들이 도전을 포기하고 몸을 무한대로 사릴 수 있게 해준 신종 신선노름 탓도 있지 않나싶다(다 SNS 탓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예술의 보편성이 비실용적인 즐거움에 있는 점으로 보아, 넥타이와 브래지어야말로 우리와 가장 친근한 예술품인 셈이다.

미쉘 투르니에는 “수영복의 표면적은 그 사람의 재산에 반비례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큰 부자들은 아예 벌거벗고 전용 수영장에서 헤엄친다는 것이다. 언젠가 시아눅빌 여행길에 구미 선진국 관광객들은 결정적인 곳만 가린 아슬아슬한 수영복차림으로 활보하는 반면, 캄보디아 사람들은 입성 그대로 바닷물에 들어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캄보디아 소수민족마을에 브래지어만 걸친 여인들이 출몰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도 있는데, 너무나 귀한 물건인지라 자랑삼아 그런다는 것이었다. 요즘 도시에서는 과감하게 노출한 캄보디아 여성의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자본주의가 득세할수록 여성의 수치심은 줄어드는 모양이다. 어느덧 브래지어는 이곳 여인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고, 노출시대의 개막과 함께 프놈펜에도 패션속옷 브랜드가 앞 다투어 진출하는 추세다.

어느 시대에나 미의 정수는 단연 “여인의 가슴”으로, 예술가의 찬양이 그치지 않았다. 로코코 회화에서는 유방에 대한 찬미를 화폭에 담지 않은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도 적나라함이 지나치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법이고, 빼어난 아름다움 뒤엔 연출이 있게 마련이다. 예나 지금이나 속옷 보정술을 이용한 여인들의 가슴선 가꾸기는 그치지 않는다. 속옷의 역사는 여성의 육체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성의 육체를 강조하기 위해서 발전해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같은 열대기후에서 보정브라는 가혹하다. 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다가 38선 보정 솜 존에 고스란히 흡수되기 때문이다. 첨단소재가 나왔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골프 라운딩이라도 하게 되면 물탱크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솜이불이 아닌 모기장 컨셉의 브라, 자칫 짓눌려도 순식간에 봉긋해지는 (부드럽고도 시원한 신소재 금속섬유의)형상기억 쿨 철망 브라, 열대전용 보정브라, 특허내면 대박이다!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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