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영원한 유언

기사입력 : 2017년 12월 20일

울음 끝이 긴 아이처럼 올해는 우기 끝이 길다. 남베트남을 거쳐 메콩 지역을 지나는 태풍 탓이라는데 밤마다 비가 제법 내린다. 빗소리 천둥소리에 늦도록 뒤척이다 겨우 잠들만 할 무렵 귀가해 “쉬었다 자”라며 깨우는 남편의 흰소리에 그날 골프 복기를 들어주었다(드라이버샷의 순우리말이 ‘왜 이러지?’라던가, 빤한 실력에 들으나 마나지만). 세상에 차고 넘치는 골프 훈수가 있지만, 골프처럼 학습이 안 되는 운동이 있을까. 그래서 인생에 비유하는지 모르겠다.

새 잠이 된 걸 어찌해 보았지만 때를 놓쳐서인지 끝내 깊은 잠을 못자고 아침을 맞았다.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핑계는 잡고 보는 사람이라 비몽사몽에 뭘 하랴싶어 군대에 있는 아들에게 편지나 쓰자꾸나 모니터 앞에 앉았다. “나이 탓일까? 하룻밤 잠을 설쳤다고 걸어 다니는 시체가 따로 없구나.”로 시작된 편지가 20대 수면부족은 시중은행 이자로, 30대 수면부족은 제2금융권 이자로, 나이 들수록 고리사채 이자로 수면부족 시간이 누적돼 신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신문기사를 근거로 들어, 규칙적인 군대생활 덕에 네 올빼미 체질도 고쳐질 것이라며 나쁜 생활습관 교정론을 펼치다가, “행복이란 손닿는 곳에 있는 꽃들로 꽃다발을 만드는 솜씨다” 결국 저명인사의 말을 인용해 군대 아니라 더한 곳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암시를 주면서 교묘한 훈계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세상에 차고 넘치는 인생 훈수가 있지만, 자기 생각을 굳히는 데 도움이 되는 충고 빼고는 모두 잔소리로 치부되기 십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식에게만큼은 깔때기 이론처럼 교훈주의로 빠지고 마니 딱한 노릇이다. 꼰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앙코르와트 서쪽 회랑 부조에는 쿠룩셰트라 전투가 새겨져 있다. 한창 전쟁하는 장면 아래로 몸에 화살이 빗살처럼 꽂혀 땅에 쓰러지지도 못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적의 화살을 맞고 죽어가는 카우라바군 최고사령관 비슈마다. 죽음을 앞두고 가족을 불러 모아 유언을 남기는 중이다.

원래 스스로 죽을 때를 택할 수 있는 반신으로 유언이 얼마나 길었던지 마치는 데 천년이 걸렸다고 한다(비토리오 로베다『앙코르와트』). “누구는 조금 못 미치고, 누구는 조금 지나치다. 그러니까 이럴 땐…, 저럴 땐…”, 천하의 권력자지만 자손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는 천년으로도 모자라지 않았을까. 자식과 자신을 분간 못 하는 불구들이 바로 부모라는 사람들이라던가, 내가 부모의 처지가 아니었더라면 그런 신화는 흘려들었을 터이다. 젊은 날의 실수, 나이 들어서야 보이는 것들, 내 자식만큼은 최선의 인생으로 이끌어야겠다는 조바심과 기대 때문에 장광설로 이어지고 만다. 꽃이 덜 피면 덜 핀 대로 만개하면 만개한 대로 지금 그대로 좋은 걸, 자꾸 조화처럼 완벽한 생화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절대 아무것도 배우지 마라. 배우지 않으면, 대신해 줄 사람이 언제든 나타날 테니.” 마크 트웨인의 어머니처럼 통 크게 내버려둬야 하는데… (사실 이 얘기도 훈시 중 하나고, 배우지 마라는 얘기 또한 책에서 배웠기 때문에 알게 되었지만)./나순(건축사, UDD건설 naarc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