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영원한 군대

기사입력 : 2017년 12월 20일

“국군장병 아저씨께” 세상 누구보다 듬직한 남자 어른을 상상하며 위문편지를 쓰던 국민학생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훈련병 아들에게” 눈치 없어서 허구한 날 원산폭격이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인터넷 위문편지를 쓰는 입장이 되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다방면 공로자로 장수를 누렸던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서 세월무상에 대한 그의 통찰력을 새삼 절감한다. 육군훈련소 사이트에 올라온 단 한 장의 분대사진. 행여 멀쩡한 내 자식 어디 하자 만들어 놓지 않았나 이리 확대해 보고 저리 확대해 보다가, 부동자세에 거수경례는커녕 단체로 손가락하트를 날리며 미소 짓는 아이돌그룹 같은 포즈에 피식 웃고 말았다.

6, 70년대에는 위문편지뿐만 아니라 위문품도 반별로 추렴해 보내는 게 겨울방학 무렵의 연례행사였다. 신문지로 뒤처리하고 왕소금으로 양치하는 게 예사였던 시절이라 휴지, 치약, 칫솔, 비누 같은 생필품을 마련해가며 못내 아까웠던 기억이 있다. “오빠에게 선크림로션 보내도 되나요?” “우리 오빠 힘내라고 비타민 소포로 부치려는데…” 요즘은 훈련소에 뭐 하나라도 더 보내지 못해 안달하는 오빠부대에게 ‘필요한 건 군에 다 있으니 자제해 주십사’하는 답변을 올리느라 바쁘다. 세월과 함께 군대 풍속도는 많이 바뀌었지만 군대는 영원할 듯하다.

가톨릭 교황국 바티칸과 일부 섬나라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가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BC 4세기 고대 그리스 시대에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테스(Kosmopolites: 세계를 고국으로 삼는 사람)라 지칭한 디오게네스에서 비롯해 권력 분산을 통한 전쟁 없는 세계정부를 꿈꿨던 현대의 러셀에 이르기까지 세계시민주의를 주창한 역사는 유구하지만, 인류가 생긴 이래 자신이 소속된 무리의 영역을 고수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국가주의가 여전히 득세다. 강대국일수록 군사력과 핵무장이라는 양 검을 차고 국제외교무대에 나서 자국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한 게 현실이다.

데스먼드 모리스는 그의 저서 <인간동물원>에 ‘지구촌에 대한 기대’란 현실을 외면한 이상주의라고 썼다. 인간은 다른 부족과 뚜렷이 구별되는 부족 동질감에 대한 욕구가 무엇보다 강력해서 기술적으로는 세계주의가 가능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어렵다는 것이다. 타국 팀을 이겨본들 개인 살림이 나아질 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경기에 열광하는 심리와 일맥상통한다. 대대로 물려온 땅에 언어, 관습이 같은 공동체에서 기득권이 주는 편의성과 위안을 얻고 소속감과 정체성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외계인이 지구를 침입할 때나 세계국가 성립이 가능하다고 할까. 현자의 중재를 받아들여 모든 국가가 동시에 무장해제를 하지 않는 한, 지정학적 경제적 경쟁구도에서 국가마다 군사력 카드를 포기할 수 없는 셈이다. 게다가 조국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니 어쩌랴. 어찌됐건 김정은이나 도널드 트럼프의 불장난을 좌시하지 않겠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무슨 ‘주의’고 나발이고 내 아들이 군대에 있기 때문이다. /나순(건축사, UDD건설 naarch@naver.com)“국군장병 아저씨께” 세상 누구보다 듬직한 남자 어른을 상상하며 위문편지를 쓰던 국민학생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훈련병 아들에게” 눈치 없어서 허구한 날 원산폭격이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인터넷 위문편지를 쓰는 입장이 되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다방면 공로자로 장수를 누렸던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서 세월무상에 대한 그의 통찰력을 새삼 절감한다. 육군훈련소 사이트에 올라온 단 한 장의 분대사진. 행여 멀쩡한 내 자식 어디 하자 만들어 놓지 않았나 이리 확대해 보고 저리 확대해 보다가, 부동자세에 거수경례는커녕 단체로 손가락하트를 날리며 미소 짓는 아이돌그룹 같은 포즈에 피식 웃고 말았다.

6, 70년대에는 위문편지뿐만 아니라 위문품도 반별로 추렴해 보내는 게 겨울방학 무렵의 연례행사였다. 신문지로 뒤처리하고 왕소금으로 양치하는 게 예사였던 시절이라 휴지, 치약, 칫솔, 비누 같은 생필품을 마련해가며 못내 아까웠던 기억이 있다. “오빠에게 선크림로션 보내도 되나요?” “우리 오빠 힘내라고 비타민 소포로 부치려는데…” 요즘은 훈련소에 뭐 하나라도 더 보내지 못해 안달하는 오빠부대에게 ‘필요한 건 군에 다 있으니 자제해 주십사’하는 답변을 올리느라 바쁘다. 세월과 함께 군대 풍속도는 많이 바뀌었지만 군대는 영원할 듯하다.

가톨릭 교황국 바티칸과 일부 섬나라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가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BC 4세기 고대 그리스 시대에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테스(Kosmopolites: 세계를 고국으로 삼는 사람)라 지칭한 디오게네스에서 비롯해 권력 분산을 통한 전쟁 없는 세계정부를 꿈꿨던 현대의 러셀에 이르기까지 세계시민주의를 주창한 역사는 유구하지만, 인류가 생긴 이래 자신이 소속된 무리의 영역을 고수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국가주의가 여전히 득세다. 강대국일수록 군사력과 핵무장이라는 양 검을 차고 국제외교무대에 나서 자국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한 게 현실이다.

데스먼드 모리스는 그의 저서 <인간동물원>에 ‘지구촌에 대한 기대’란 현실을 외면한 이상주의라고 썼다. 인간은 다른 부족과 뚜렷이 구별되는 부족 동질감에 대한 욕구가 무엇보다 강력해서 기술적으로는 세계주의가 가능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어렵다는 것이다. 타국 팀을 이겨본들 개인 살림이 나아질 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경기에 열광하는 심리와 일맥상통한다. 대대로 물려온 땅에 언어, 관습이 같은 공동체에서 기득권이 주는 편의성과 위안을 얻고 소속감과 정체성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외계인이 지구를 침입할 때나 세계국가 성립이 가능하다고 할까. 현자의 중재를 받아들여 모든 국가가 동시에 무장해제를 하지 않는 한, 지정학적 경제적 경쟁구도에서 국가마다 군사력 카드를 포기할 수 없는 셈이다. 게다가 조국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니 어쩌랴. 어찌됐건 김정은이나 도널드 트럼프의 불장난을 좌시하지 않겠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무슨 ‘주의’고 나발이고 내 아들이 군대에 있기 때문이다. /나순(건축사, UDD건설 naarc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