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팬티

기사입력 : 2017년 08월 09일

행복은 거창한 데 있는 게 아니다. 겨울이면 와이셔츠 위에 카디건을 꼭 챙겨 입는 남편에게 칼라와 커프스만 다린 와이셔츠를 입혀 감쪽같이 게으름을 감추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어디 가서 벗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한겨울에 무슨 열기가 그리도 뜨거운 업소에서 회식들을 하는지 더워서 모두 셔츠 차림이 되는 바람에 다 들통 나고 말았지만. “꼬깃꼬깃한 와이셔츠는 애교지. 탈 바지를 꿈도 못 꾸게 된 사람도 있는데” 하는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소싯적 한눈을 판 죄로 아내가 넝마 팬티만 입게 해 새 팬티 구경한지가 언제 적인지 모른댔다나.팬티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현생인류가 4만 년 전에 출현했고 현대속옷은 18세기에 등장했으니 거의 노팬티로 지낸 셈이다. 누드김밥이 있듯이 노팬티 또한 장르에 넣어야 된다면야… 그나마 공산품은 한참 뒤에 나왔고 2차 대전 후까지 대부분 집에서 만들어 입었다. 어릴 적 할머니 속곳에 대한 추억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어디서 엿가락 같은 걸 얻으면 손자들 주려고 꿍쳐 오셨는데 겉치마 속치마 몇 겹을 들추고야 고쟁이가 나왔다. 게다가 주머니는 고쟁이의 안쪽 깊숙이 있어서 어렵사리 꺼내주신 그 엿이 썩 내키지 않았다. 삼각팬티의 발명자도 다름 아닌 할머니다.

무더운 여름날 손자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속옷을 입고 허덕이는 게 안타까워, “속옷은 중요 부위만 가리면 되는 것이지”싶은 생각에 헌 자루를 싹둑 잘라 양다리 넣을 구멍만 남기고 꿰맨 것이다. 1951년 일본의 사쿠라이 여사가 특허출원 했는데 대히트였다. 반세기 남짓 짧은 기간에 팬티가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그 시절 삼각팬티를 거쳐 트렁크 팬티에 드로우즈, 힙스터, T-팬티 등 다양한 디자인이 쏟아져 나와 팬티의 르네상스를 구가하고 있다.팬티에 대한 생각 역시 각양각색이다. 태풍에 고립된 여인이 헬기 사다리에 매달린 채 치켜진 치마 속 팬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구조되는 장면이 메인뉴스를 장식한 적이 있다. 그 뉴스를 본 뒤로 한 지인이 패션 철학을 바꿨다. 삶의 불확정성에 대비해 늘 최고급 브랜드의 팬티를 입고 지내기로 한 것이다.

인간의 마지막 보루인 팬티를 노출할 시점이란 예기치 못할 사고(연인과의 우발적인 사랑을 포함해서)나 죽음 등,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아무리 잘 차려입었더라도 팬티가 누추하면 인생 전체가 헐해 보인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어쩌다 팬티 얘기를 하게 됐더라? 얼마 전 우리 공동체 봉사자들을 위해 남성용 팬티를 제작해 주신 분 덕택에 여러 남성동포들이 팬티를 선물 받았다. 사이즈를 골라주는 척 남의 아저씨 엉덩이를 대놓고 쳐다볼 수 있었던 탓인지 다른 물건을 나눌 때보다 훨씬 즐거웠다. 직립보행 하는 인류만 가지는 반구형 엉덩이에서는 나이불문 천진함이 느껴지지 않던가. 생각해보니 독신 여성동포에게 더 필요한 건데 간과한 듯하다. 옛 어른들 말씀이 혼자 사는 여자 집에 남자 속옷을 걸어 두면 방범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고 하셨는데. /나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