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마감

기사입력 : 2017년 07월 26일

“지갑 속에 있는 지폐들끼리 섹스해서 번식했으면 좋겠다.” SNS상의 발랄한 표현이다. 무엇이든 담아두면 끝없이 새끼를 처서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다던 전설의 단지 “화수분”에 대한 최신 버전인 셈이다. 재물, 사랑, 건강, 신뢰, 인간사의 온갖 기복과 변덕에 쫓기는 게 사람살이이다 보니 영원을 바라는 마음은 여전한 듯하다. 막상 첫눈에 반했을 때처럼 끝끝내 열렬히 사랑할 수 있을까만.

건축 현상설계에 응모하기까지 수없는 조율 과정을 밟는다.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제시하는 브레인스토밍을 거처 여러 대안을 만들어 토의하고 그 중 대표 안을 정해 계속 발전시켜나간다. 확정된 디자인으로 프레젠테이션 작업을 하면서 수정과 보완을 거듭한다. 어느 분야나 창작자의 욕망은 무한하다. 작품에 만족할 줄 모르니 타협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종지부를 찍게 해 주는 건 마감시한이다. 마감이 없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임박해서야 의욕이 발동되는 게 인지상정 아니던가. 실제 시공을 앞둔 건물 설계안을 두고 합의점을 찾기란 더욱 힘들다. 건축에 대한 경험, 지식, 조건, 취향이 건축주, 건축가, 실무자 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시간보다 더 강력한 한계가 협의를 마무리하게 해준다. 바로 “예산”이다. 서글프게도 돈이 의사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의 길이나 시간의 질은 마감 앞에 상대적이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효율적인 시험공부는 벼락치기일 테다. 시험이 내일 모레다 싶을 때에야 부모님 얼굴도 아른거리고 선생님의 당구장표(※)항목도 떠오르면서 머리가 획획 돌아가지 않던가. 작가, 화가, 음악가 등 예술인 중에도 많은 사람이 창작을 하는 게 자신이 아니라 마감이라고 말한다. 데드라인이 주는 긴장이 없다면 타고난 재능의 반밖에 발휘하지 못할 것이고, 기한이 없다면 영원히 회의(懷疑)만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화수분의 돈에 무한대의 소재와 만족할 때까지 주어진 시간이라니, 넉넉하면 풀리게 마련이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빈둥거릴 기회만 생기면 신선놀음에 빠지기 일쑤다. 이처럼 우리는 스스로 질서를 부여하기엔 턱없이 약한 존재다. 요컨대 예산과 시간, 에너지 같은 자원의 제약이야말로 놀라운 원동력이다. 역사상 탁월한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전쟁처럼 극도로 절박한 상황에서 탄생했다. 누구나 닥치면 하게 되던 경험이 있으리라. 이런 현상을 “마감효과”라고 한다.

인생이 무한하다면, 언제까지나 산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거의 비슷해지지 않을까. 영겁으로 주어진 인생이라면 우선순위라는 게 별 의미가 없을 듯해서다. 어떤 순서에 따라 시간과 에너지를 분배하며 살 것인가, 가치관의 차이야말로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요인이다. 일회용 인생이기에 작동되는 원리이리라. 일테면 영원함은 무(無)와 일맥상통한다.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마감 없는 것들은 의심스럽게 마련이다. 오다가다 하는 기약 없는 약속, 막연한 약관의 보험, 정치가들의 선심성 공약… /나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