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장미 전쟁

기사입력 : 2017년 07월 07일

고아로 살아온 연인이 안쓰러워 다시는 설움당하지 않게 지켜주겠노라며 결혼해놓고, 부부싸움에 이력이 붙을 지경에 이르면 부모 없이 자라 보고배운 게 없다며 상대의 상처를 후벼 파게 되기도 한다. 부부란 서로의 슬픈 역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기에 서로를 아프게 하는 방법 또한 가장 잘 알고 있기 십상이다. <장미의 전쟁>은 부부싸움의 비극을 다룬 영화다. 첫눈에 반해 결혼하여 자수성가한 부부는 상류층의 상징인 저택을 마련한다. 흔히 그렇듯 성공 후 부부간 갈등이 고조돼 이혼절차를 밟게 된다. 엘리트 출신들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물러서면 지는 거야” 한 치의 양보 없이 전투적으로 몰아가 더 이상 치졸해질 수 없을 만큼 치졸한 공방전을 벌인다. 집을 절반으로 갈라 금을 긋기에 이르고 폭력전은 회를 거듭할수록 거칠어져 급기야 거실 샹들리에에 매달려 난투를 벌이던 중 추락한다. 둘 다 죽음으로써 평화를 맞는다.

개인 간 전쟁이나 국가 간 전쟁이나 그 속성은 다를 바 없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투창은 그리스시대부터 사용됐다. 처음엔 전체를 담금질해 단단하게 만들었는데 적군이 맞고도 창이 말짱해 다시 뽑아 아군 공격용으로 썼다. 그러자 맨 끝 촉부분만 담금질하고 몸체는 약하게 하여 맞으면 강한 촉이 몸에 치명상을 입히지만 살대부분은 구부러져 다시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중세 때는 기사들 갑옷이 점점 두꺼워져 창으로 뚫을 수 없게 되자 기사가 타는 말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를 막기 위해 말 보호용 마갑(馬甲)을 개발했는데 나중에 말이 어마어마한 무게를 견디지 못할 정도가 되고 말았다. ‘모순(矛盾)’이란 말의 유래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강한 창을 만들면 그것을 막는 방패를 만들고 또 그것을 뚫는 창을 만드는 공격과 방어의 순환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현대 미사일은 2000km 내의 적군 미사일을 레이더로 탐지해 요격할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 전쟁사의 변함없는 순환은 그뿐만이 아니다. 기사들과 말들은 끊임없이 죽어나가는 대신 공포를 치세 수단으로 삼는 권력층과 군비경쟁에 편승한 무기장사꾼들은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연이어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촛불민심 연장선의 새 정부 출범 이후 벌써 5차례에 이르렀다. 한반도하면 6.25 동족상잔을 떠올리듯 남북은 ‘동족’으로 더없이 가까운 처지다. 체제유지를 위한 대결국면을 거쳐 오면서 세계에서 가장 섬뜩하게 여기는 집단이 돼버렸지만. 남북 대치상황은 부부의 대치상황과 닮은 구석이 많다. 한편이 되면 누구보다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살가운 사이지만 관계가 어긋나면 가까운 만큼 갈등은 더 빈발하게 마련이고 그 결과 또한 더욱 치명적이어서 회복하려면 오래도록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외교 안보를 넘어 경제로 얽힌 한 미 중의 복잡한 역학 관계 속에 위험천만한 ‘북한 정권’과 끌어안아야 할 ‘북한 동포’, 어쨌거나 북핵 포기를 위한 ‘압박’과 교류를 위한 ‘대화’를 병행하려는 새 정부 갈 길이 험난해 보인다. / 나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