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천재를 키우는 사회

기사입력 : 2017년 07월 07일

‘힘들게 1등은 해서 뭐해? 최소의 노력으로 최고의 효과를!’ 수석 합격이 목표인 사람을 안쓰러워하며(?) 평생 턱걸이 합격에서 보람을 찾아온 사람이지만, 주변에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의 일상을 보노라면 “공부는 노가다”라는 어느 수재의 고백에 수긍하게 된다. 70년대에 명문고를 수석 졸업하고 그제나 이제나 최고로 쳐주는 대학학과에 합격하신 분이 있다. 공부는 언제 하나 싶게 여유를 잡으며 다니셨는데, 나중에 보니 다 써서 투명해진 모나미 볼펜심이 커다란 서랍으로 가득이었다(볼펜심만 갈아 끼워 쓰던 시절). 책상 앞 단에 눌린 갈비뼈 부위가 패일 정도였으니 그 열심을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시험문제에 뭐가 나올까? 내 위치는 어디쯤일까?’ 공부 잘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시험을 즐기는 데 있다. 어떤 교사가 시험일정을 내키는 대로 변경하고 불공정한 방식을 방기하게 되면 과목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한 집단에서 천재가 집중적으로 배출되는 현상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가 특정 대학이나 연구 센터에 몰리는 경우가 그렇고, 르네상스를 촉발한 피렌체의 역사가 그렇다. 15세기 인구 5만에 못 미치던 그 작은 도시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같은 천재들이 줄줄이 나왔으니.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특별히 그 민족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스포츠, 학문, 예술 모든 분야에서 재능을 최대한 신뢰해 서로 협력하고 자극하는 가운데 경쟁할 수 있었던 당시 사회 분위기와 무엇보다 후원자들의 수준 높은 주문이 상상력을 도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량을 총동원해 진검승부를 벌이고 시합이 끝나면 서로를 격려하며 차후 더 멋진 플레이를 기약하는 스포츠경기처럼, 페어플레이와 연대감의 조화야말로 삶에 대한 열정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아닐까.

캄보디아 교육현장의 부정행위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에서 강경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쉽사리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학생 간의 컨닝보다, 시험 감독관과 교사들이 결탁하여 시험답안을 학생들에게 팔아넘기는 행위가 더 큰 관건이라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80년대 서슬 퍼렇던 훈센총리가 시험부정을 척결하기 위해 M16으로 중무장한 병력을 교실 바깥에 배치하여 해외토픽 란을 장식하기까지 했다니, 부정행위의 뿌리가 깊고도 깊은 모양이다. 교육계가 이렇다보니 인재를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대졸자나 무학자나 직업 성취도가 거기서 거기일 정도다. 캄보디아는 단순노무자, 대졸사원, 교사, 경찰 사이의 급여 차이가 별반 크지 않다. 체계적으로 경력을 쌓아서 자격을 얻는 경우가 드물다보니 그에 걸 맞는 실력을 갖추지 못하고, 그렇고 그런 뒷거래가 만연하다보니 직업에 대한 권위 또한 떨어진 탓이다. “천재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괴테가 한 말이다. 노력과 도전에 대한 보상은커녕 조롱거리가 되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탁월함이 묻히기 십상이다. 운명주의와 패배주의 분위기에서 천재의 발현을 기대하기란 힘든 노릇이다. / 나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