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돼지흥분제

기사입력 : 2017년 05월 09일

‘돼지흥분제’효과가 좋긴 좋은 모양이다. 대다수 국민을 흥분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40여 년 전 대학생 때 동료의 짝사랑을 이뤄주기 위해 돼지흥분제를 구해주며 성폭행범죄를 모의했다는 내용을 버젓이 자서전에 기술한 인사가 유력 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때까지 걸러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충격 때문이리라.

여자가 웃으면 헤프다 웃지 않으면 사납다하고, 여자가 안경을 쓰면 점수 깎인다 똑똑하면 팔자 드세다하고, 심지어 여자가 마수걸이를 한 날은 재수가 없다고 치부하던 당시 6,70년대 야만의 시절 얘기로 애써 치부하고 싶어도, 대선후보로 나선 최근 인터뷰에서 “설거지는 하늘이 정해준 여자의 일”이라고 발언 한 걸 보면 여성비하 정서가 그 사람 뼈 속 깊이 밴듯하다. 사실 여성을 폄하하기도 했지만 설거지까지 폄하했다. 설거지 파업을 하면 그릇이 없어져 끼니를 굶게 되지만 정치 파업을 하면 거짓말쟁이가 싹 없어져 세상이 깨끗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설거지도 정치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고 정치와 마찬가지로 남녀불문 할 수 있는 일이다. 일파만파 논란이 확산되자 “세게 보이고 싶어서 여성혐오적 발언을 했다”는 말로 해명이랍시고 ‘스트롱맨’ 시전을 해보였다. 강하게 보이고자하는 남성성을 겨우 집안의 아내를 휘어잡는 것으로 과시하려하다니, 누구 말마따나 ‘스트롱’이 아니라 ‘나이롱’이다. 요컨대 허세다. 허세라는 것은 못난이의 전유물이다. ‘공격성 방향 전환’이라는 학술 용어가 있다. 우위 다툼에서 패배한 개체가 공격성의 방향을 돌려 약한 희생양을 찾아 억눌린 분노나 폭력을 배출하는 현상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콩가루 집안에서는 영락없이 애꿎은 아내나 자녀, 강아지가 최후 분풀이 대상으로 학대당하곤 한다. 여성과 동물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그 집안의 면면을 가늠할 수 있다. 국가라고 다르지 않다.

민주국가의 정치인이라면 불평등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마땅하다. 사람의 태생적인 속성, 일테면 남녀차별, 신체차별, 인종차별, 출신지차별 등과 같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타고난 것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일이 기본일 터이다. “사회적 차별은 공익을 바탕으로 둘 때만 가능하다” 프랑스 대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조의 내용이다. 1789년 유럽에서는 여기까지 합의된 셈이다. 한국이 뒤늦게 고속성장을 이뤄 문명국 흉내를 내고 있지만 여성차별 지표는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다. 돼지흥분제 성폭행 모의에 대한 기사에 ‘젊은 시절 낭만’이니 ‘한때의 추억’이니, 주렁주렁 달린 한국남성들의 댓글만 봐도 그렇다. ‘나 돌아가고 싶다’는 자서전 제목처럼 그나마도 그 때가 그리운 모양이다. 사회지도층 인사, 특히 국가수반의 인성검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권력이란 정치와 경제, 군사적 파급력뿐만 아니라 권력자의 행위유형과 사유습관까지 일반국민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차별까지 갈 것도 없이 절반의 국민에게 절망을 안겨줄 여성차별 후보만큼은 결사반대다. 절반이 불행한데 나머지 절반이라고 행복하겠는가. /나 순 (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