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 칼럼] 혼밥, 혼술, 나홀로족

기사입력 : 2016년 12월 21일

“자본에 대해 쓰지만 말고 자본을 좀 모았으면 좋겠구나.” 오랜 세월 자본의 지배법칙을 밝히는 데 천착했지만 좀처럼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해 늘 빚에 쪼들렸던 마르크스, 그를 탕자처럼 여겼던 어머니가 한 말이다. 평생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동지인 엥겔스의 연인이 사망했다는 비보에 “메리가 아니라 어차피 병도 들고 살만큼 산 우리 어머니가 죽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네.”라며 모친의 유산을 염두에 둔 편지를 쓸 정도로, 마르크스는 자본의 잔인한 본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 사람이다. 혁명가로서의 삶과 결혼생활을 병행하기가 힘들었던 탓인지, 다시 태어나더라도 같은 일을 하겠지만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가족을 거느리지 않은 자는 행복”하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나는 당장 다음 달 집세는 어떻게 구할 것이며, 만약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하면서 살았어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그런 인생을 살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해요. 자기 인생을 살 수 없어요.” 미국 작가 레이먼드 카버는 일찍 결혼해 경제적 압박에 시달린 나머지 에세이를 통해 이렇게 고백했다. 요즘은 과거와 달리 어쩔 수 없는 빈곤이나 개인적인 소신이 아니더라도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하는 추세다. 전통적으로 가족을 중시하는 중국이 인구 13억 중 2억이 독신가구다. 한국은 중국보다 더 심해 1인 가구가 27퍼센트에 달하면서 이미 대표적인 가구형태로 자리 잡았다. 일부 서구문화권에서는 40퍼센트를 넘어서고 있다. 선진 사회로 갈수록 독신비율이 높은 것을 보면, 가공식품이나 자동화주거, 온라인커뮤니티 등, 문명의 발달이 가족의 조력 없이 살 수 있는 생활을 가능하게 한 모양이다. 더불어 살면서 소모할 시간을 자신에게 바치겠다는 냉소적 자유주의. 오로지 나만 책임지면 그만, 더 이상 결혼도 아이도 원치 않는 합리적 무소유. 결혼을 포기하는 비율이 이정도면 그건 포기가 아니라 트렌드나 문화라고 보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 가족을 트렁크가방에 비유했다. 들고 다니기 힘들지만 필요할 때 이것저것 꺼내 쓸 수 있다는 면에서, 꾸려나가기 버겁지만 서로 돕고 의지하는 가족과 비슷하다는 의미일 테다. 24시 편의점시대, 고객 맞춤시대엔 그리 어울리지 않는 비유다. 혼밥(혼자 밥), 혼술(혼자 술), 혼놀(혼자 놀기)족, 갈수록 개인화가 심해지는 시대인 것이다. 혼자 아픔, 혼자 슬픔, 혼자 죽음에 이르는 일이나 없으면 좋으련만… 어느덧 세밑이 다가온다. 올해도 여전히 아이들 어릴 때 만든 해묵은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놓았다. 매년 장만하는 게 귀찮아서 굵은 철사를 접어 만년묵기로 만들었다. 작고 소박한 것이지만 그나마 혼자 살았더라면 꿈도 꾸지 못했으리라. 젊어서 실컷 싱글의 자유를 누리다가 연륜이 쌓일 즈음 소울메이트(soulmate)를 만나 함께 늙어가는 인생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을 때도 있지만, 혼자서는 끼니도 제 때 안 챙겨먹는 나 같은 귀차니스트는, 혼자가 아니라서 해낸 일(어쩌다 유의미한 일까지)이 적지 않다.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