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도가니 현상

기사입력 : 2011년 10월 03일

2008년 9월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 분노의 도가니였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리먼 브라더스의 행원들은 리처드 펄드 최고경영자(CEO)의 사진에 압정을 꽂는 것으로 분풀이를 대신했다. 한 화가는 월스트리트 길거리에 펄드의 초상화를 세웠다. 행인들이 그 위에 낙서를 했다. 펄드의 얼굴은 이내 분노의 단어로 덮였다. 지금 월가는 시위대의 분노로 다시 끓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압정과 낙서로 대응했던 차가운 분노가 유럽발 재정위기 상황에선 집단시위로 뜨겁게 바뀌었다.

3년 전 11월 버락 오바마가 미 대통령에 당선됐다. 흥분의 도가니였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친목 농구경기 중 다툼이 일면 언제나 중재는 오바마의 몫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제위기는 농구경기와 달랐다. 오바마의 중재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문제의 해결보다 봉합에 급급한 어정쩡한 태도가 실망을 키웠다. 그런 그가 3년 만에 부자증세를 주장하며 ‘중산층의 전사(戰士)’를 자처했다. ‘계급투쟁’을 부추긴다는 보수파의 비난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자세다. 3년 만에 오바마는 차가운 중재자에서 피끓는 전사로 변신하고 있다.

금융위기와 오바마 당선으로 어수선하던 3년 전 11월 공지영 작가의 소설가 인터넷에 연재되기 시작했다.의 도가니였다. 6개월간 클릭수가 1600만에 달했다. 책도 2년여 만에 50만권이 팔렸다. 천인공노할 인권침해와 이를 방치한 형편없는 세상에 대한 분노의 클릭이자 책읽기였다. 그런데 지난 22일 선보인 영화는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도 기본 코드는 공감(共感)과 공분(公憤)이다. 이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의지가 영화관을 향한 발길로 이어지고 있다.의 공분이 클릭과 독서에서 발품으로 바뀌면서 ‘도가니 현상’으로 세상이 들썩하다.

3년 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월가의 시위는 금융의 탐욕 탓이고, 오바마의 전사 변신은 재선을 위한 포장이며, ‘도가니 현상’은 영화의 힘이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시민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의 지적처럼 ‘제 기능을 상실한 민주주의’가 시민의 정치적 열정에 불을 지피고 있다. 요컨대 세상이 바뀐 것이다. 도가니 현상도 요약하면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가 아닐까 싶다. /경향 유병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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