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 칼럼] 미디어 정치

기사입력 : 2016년 10월 27일

“그, 통통하고 이쁘장한 아줌마 있잖아…” 우연히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대화를 엿듣게 된 지인이 ‘내가 통통한 아줌마로 통하는구나’, 쇼크를 먹고 당장 다이어트에 돌입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4차원”이니 “날라리”니, 주위에서 통용되는 한마디 요약이 우리 모두 애지중지해 마지않는 자기 정체성의 객관화된 실체가 아닐까싶다. 어차피 타인이 관심을 두는 건 상대의 진면목보다 자신이 보고자하는 면이게 마련이니. 외모는 내면의 반영이라고 하나 인생은 불공평한 것, 타고난 외적자원의 차이로 분명 손해 보는 축과 이익 보는 축이 있으리라.

외모 덕을 본 사람으로 43세에 미국 최연소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를 꼽을 수 있겠다. 계속 열세를 면치 못하던 케네디가 1960년 최초로 도입한 대선후보 TV 토론회에서 매력적인 용모로 표심을 사로잡아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지독한 워커홀릭으로 경륜과 지도력을 다져온 노련한 닉슨이 TV 화면에 진정성이 넘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한 카메라 시선처리 요령과 얼굴표정, 제스처로 포장한 정치신인 케네디에게 밀리고 만 것이다.

클린턴과 트럼프의 1차 TV 토론이 얼마 전 치러졌다. 여성 대 남성, 통합주의 대 신고립주의 못지않게 두 사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광경이 있었다. 맨 앞줄에서 열심히 지켜보는 가족구성원의 모습이다. 클린턴측은 백발의 남편과 엄마아빠를 빼닮은 딸이, 트럼프측은 트로피와이프를 연상시키는 젊은 아내와 아내의 친구뻘로 보이는 딸이 앉아있었다. 불륜으로 세계의 우세를 산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은 남편에 대한 감정을 누르고 가정을 지킨 현실적이고 냉정한 힐러리와 특유의 직설화법만큼이나 그 때 그 때 사랑에 충실해 화려한 여성편력을 보인 즉흥적이고 천진한 트럼프의 성향차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토론 결과 대체로 힐러리가 기선을 제압했다고 하지만 일부 예리한 정치평론가들 의견은 다르다. 트럼프의 단단한 지지층은 여자가 명민해보일수록 싫어하는 부류로 힐러리가 따박따박 이치에 맞게 답변한 게 오히려 반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역설적으로 한국 박근혜의 당선요인을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이유 없이 싫은 감정’의 원인이 대충 그 비슷한 심리 아니겠는가.

누가 뽑히든지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 대선결과는 지구촌 곳곳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터이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대란이 전 세계를 궁지로 몰아넣었고, 그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규제와 감독소홀이 자리하고 있지 않던가. 명분과 논리, 달변일색의 기성 정치인에 염증을 느낀 미국유권자가 내키는 대로 발설하는 트럼프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모양이다. 교양이나 예의가 가식으로 비치기 쉽듯이 야만과 무례가 솔직함으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믿기지 않는 박빙의 추세로 보아 ‘주도면밀한 정치가’가 ‘왕재수 할망구’로, ‘입에 걸레를 문 한량’이 ‘진정한 싸나이’로 어필되고 있지 않나 염려스럽다.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