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 칼럼] 그 이름은 남자

기사입력 : 2016년 06월 23일

전두환 시절 남자들 군대 이야기다. 월동준비 작전으로 김장하는 날, 졸따구가 한쪽에서 버무려진 김치를 나르고, 고참이 지하 김장벙커에 들어가 김치를 쟁인다. 전 부대원 먹거리인 만큼 산더미 같은 배추는 여간해서 줄지 않아 작전이 길어진다. 앞치마와 고무장갑, 고무장화로 완전무장(?)한 벙커 속 고참이 온통 시뻘건 고춧가루 범벅인 채 소변이 마렵단다. 말릴 틈도 없이 김치저장고 벽에 대고 볼일을 시원하게 봤다는데, 그 해 김치맛이 단연 최고였다나. 문화나 문명이 사회 발전을 위해 자연을 거스른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반(反) 생물학적이지만, 남자들 사이에서 묵인되는 행동양식은 적잖게 생물학적인 쪽으로 기운다.

예로부터 군대는 남성성의 보급로 역할을 해왔다. 아직도 많은 부분 유효하게 작동한다. 남자 복식도 군복에서 유래됐다. 국회의원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뉴스영상을 보노라면 민간인인가 군인인가 싶을 정도로 천편일률적이다. 다양한 패션을 보여주는 건 드문드문 여성의원 뿐이고 온통 진한 색 슈트 일색이니. 인류 대부분의 역사를 차지하는 수렵 채집 시기에 무리지어 사냥하던 습성대로 그룹 속의 남자는 튀는 것에 대해 대부분 거부감을 드러내는 듯싶다. 연인이나 혈연관계보다 사회에서 맺은 관계에 더 비중을 두기도 해, 낮에는 ‘일’로 밤에는 ‘부어라 마셔라’로 낮밤을 어울려 다니는 부류도 드물지 않다(잘난 남편 직장과 국가의 남편, 못난 남편 내 남편). 그러면서도 그 무리 안에서 죽어라 경쟁을 벌이는 게 또 남자사람이다. 어떤 양로원 직원의 경험에 따르면 여든 살이 넘는 남성들끼리 현관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주먹다짐을 벌이기 일쑤라니, 말 다했다.

“아버지 빼고 세상 남자들은 다 도둑놈이다” 부친에게 늘 듣던 소리를 학교에 가서는 남자선생님에게, 사회에 나와서는 남자동료나 남자상사에게 듣곤 했다. 부친을 포함하여 마초냄새를 풍기는 남자들이었는데, 남성 스스로 자신의 성을 예비범죄자 취급하면서 여성을 단속하려는 것이다. 친정아버지는 막내딸인 내 결혼식이 끝나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다. 세 딸을 연이어 혼인시키고 막내딸까지 보내게 되면 서운하실 만도 하건만, 사위 넷을 모아 놓고 두 손을 탈탈 털어 보이며 일갈하시길, “내 할 일은 끝났다. 앞으로 니들이 알아서 해라.” 사위에게 딸 손을 건네는 결혼예식이 소유권 이전식이라도 되는 양. 이렇듯 남성은 여성을 관리대상으로 대하려 한다. 기꺼이 부양하고 보호하는 책임까지 떠안으면서.

세계적으로 기성세대 남자의 사망원인 1, 2위는 자살이 차지한다. 갈수록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낮은 성취감과 경제적 스트레스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남자구실’에 대한 압박감이 주원인이라고 한다. 강인함을 강요받는 가부장적인 사회일수록 더하다. 남자에게 있어 소위 ‘상남자’는 가장 매력적인 꿈이자 가장 잔혹한 현실인 셈이다. “여성 해방은 남성 해방도 된다.”는 미국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 말을 새겨볼만 하다.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