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 칼럼] 그 이름은 여자

기사입력 : 2016년 06월 23일

“갈뫼 딸그마니네집 / 딸 셋 낳고 /…이번에도 숯덩이만 달린 딸이라 /…딸그마니 아버지 홧술 먹고 와서 / 딸만 낳는 년 내쫒아야 한다고…” ‘고은’의 시 <딸그마니네>의 일부다. 우리 자랄 때까지만 해도 딸을 그만 낳으라는 의미의 ‘말례’, ‘끝순’, ‘딸막’ 같은 이름이 존재했다. 성함이 ‘달막’이인 한 할머니가 노년에 이르러 가톨릭 영세를 받았는데 하필 세례명이 ‘막달레나’여서 신부님께 항의하러갔다고 한다. 평생 이름 때문에 겪은 설움이 한꺼번에 폭발했다는 것이다.

딸, 딸, 딸, 딸, 아들, 아들. 우리 집 출생서열이다. 늘 남녀평등을 공언할 정도로 계몽된 부친이셨지만, 갈 데까지 가보자식 서열이 말해주듯 대를 이을 아들에 대한 관습으로부턴 자유롭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스트라이크 없이 연속해서 볼 넷을 날리신 데 아버지 공헌도 크셨지만 주변에서는 어머니만 몰아붙였다(남자는 스트라이크, 여자는 볼이라는 비유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다니!). 넷째 딸이 바로 나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모친에게 불효자가 되었다. 40여년 겪을 달거리, 결혼 내내 이어질 출산 육아 허드렛일, 선뜻 친정 나들이조차 못 나서는 평생의 부자유…, 어머니가 줄줄이 딸을 낳고 서운했던 것은 당신과 비슷한 길을 걷지 않을까 하는 암담한 예감 때문이었다고 훗날 말씀해 주셨다.

사람들은 거의 규칙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주기의 길고 짧음만 다를 뿐 규칙적인 지각, 규칙적인 히스테리, 규칙적인 폭음의 패턴을 흔히 볼 수 있지 않던가. 더러는 규칙적으로 여자를 때리는 이도 있다. 예전 우리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가 그랬다. 남편이 밤 마실 나갈 채비를 한다.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잘 차려입은 남자는 묵묵히 듣는다. 여자의 레퍼토리는 정해져있다. 구경꾼이 하나 둘 모여든다. 이쯤이었지 싶을 때 남자의 주먹이 날아간다. 여자는 더욱 길길이 뛴다. 구멍가게가 생계 수단의 전부이고 그 치다꺼리는 대부분 여자 몫이다. 남자는 술, 도박, 난봉질로 물의를 일으키는 데 규칙성을 어기는 법이 없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수군거린다. “여편네가, 조금만 참으면 터지진 않지.” 대개 비굴한 안전 쪽을 택하는 여자들과 달리, 그녀는 용감한 피해자일 따름인데.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고정관념은 작금의 문명사회에서도 여전하다. 새벽 시간 노래방 화장실에서 23살 여성이 생면부지의 남성에게 살해된 강남 살인사건과 여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집단 성폭행당한 신안군 집단강간 사건에 대해,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아야지”, “여자가 술을 왜 못 거절하는가” 아류의 댓글이 여기저기 버젓이 달린다. 살인과 윤간을 저지른 인간짐승 범죄자보다 성적약자인 여성피해자에게 생물학적 관습적 차별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데이트 상대를 처음 만날 때 가장 무서운 상황으로 남자들은 ‘뚱뚱한 여자’, 여자들은 ‘살인범’과의 대면을 꼽았다. 남녀 간 삶에 대한 리스크 격차가 이렇게 크다. 언제쯤이면 좁혀지려나.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