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 칼럼] 어버이날에 즈음하여

기사입력 : 2016년 05월 23일

덥다. 한국 여름을 찜통더위라 한다면 캄보디아 여름은 건식사우나에 비견할 만하다. 누군가 에어컨 발명자에게 노벨평화상을 줘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요즘 같은 날씨에 원초적으로 부대낄 수밖에 없는 가족 간 평화를 유지하는 덴 적잖게 기여하는 듯하다. 캄보디아 출산율이 시원찮은 이유로 연중 고온 날씨에 육아부담을 꼽기도 한다. 어린 것들이 추위를 알까 더위를 알까 어미에게 찰거머리처럼 들러붙기 일쑤니. 우리 어릴 적에도 삼복더위에 시새워 엄마 품으로 파고들다가 날벼락을 맞곤 했다. “오뉴월엔 뚝 뚝 떨어져서 놀아라, 웬수들아!”

옛날 농촌에는 갖가지 터부가 많았는데 우리 어머니도 마찬가지셨다. 들녘에서 음식이라도 먹을 때면 으레 ‘고시레!’를 외치며 헌식하는 것은 물론, 문지방에 앉으면 복 달아난다느니, 저녁에 손톱발톱을 깎으면 귀신이 나온다느니,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느니… 그러던 양반이 갑자기 그런 게 다 헛것임을 천명하셨다. 어디서 들었는지, “여기가 밤이면 미국은 한낮이라던데…”하시며. 그러나 ‘처녀 적에 고생하면 시집가서도 고생’이라는 믿음만큼은 저버리지 못하고, 딸들이 말만해지도록 부엌일이며 허드렛일을 혼자 감당하셨다. 그 덕분인지 남편 손에 물 묻히는 수완을 발휘하며 다들 그럭저럭 큰 고생 없이 살고 있다.

친정 모친은 무학(無學)이다. 손자가 동화책 읽어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한글을 깨쳐 까막눈은 겨우 면하셨다. 한국 땅에서 여식은 잘 봐줘야 ‘살림 밑천’으로, ‘교육 혜택’을 받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는다. 불과 육칠십 년 전만해도 오빠, 남동생, 집안 뒷바라지하느라 학교문턱에도 못 가본 여성이 부지기수였다. 그런 탓인지 요즘 할머니들에게 학교체험이 인기라고 한다. 춤교실, 노래교실, 건강교실 등, ‘교실’자를 붙인 곳에 앉아 한참 나이 어린 사람에게 ‘선생님, 선생님’을 연발하며 마냥 행복해하고, 교복 한번 입어보는 게 평생소원이라 교복 코스프레 행사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모친께서도 못 배운 게 천추의 한이었던지라, 줄줄이 태어난 네 딸에게 당시 가정형편에 넘치는 교육을 시키셨다.

우리 부모님뿐이겠는가, 무릇 부모라는 사람들은 자식의 삶이 자신보다 낫기를 바라기 마련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교육열로 초고속 경제성장을 일궈 지적 수준이나 삶의 수준이나 자신보다 월등한 세상을 자식 대에 물려주었건만, 여전히 가난뱅이에 무식쟁이로 배척받는 노인세대를 떠올리니 씁쓸하다. ‘엄마부대’니 ‘어버이연합’이니 사회약자에 대해 모진 언행도 불사하는 일부 보수단체로 인해, 우리 마음의 마지막 보루 같은 ‘엄마’와 ‘어버이’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돈 몇 푼에 동원되는 ‘관제 데모꾼’ 이미지로 전락해버린 현실 역시 씁쓸하다. 아직도 ‘엄마’ 소리에 눈자위가 더워지는 거죽만 늙은 고아(孤兒)이고 보니,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던 ‘어버이날’의 의미도 퇴색하고 모친 얘기를 어느덧 과거시제로 쓰고 있자니, 이 또한 씁쓸하고.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