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 칼럼] 캄보디아의 안젤리나 졸리

기사입력 : 2016년 03월 09일

“안 졸리나?, 졸려?” 이런 썰렁한 농담에 야유나 주먹이 날아오는 대신 과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면, ‘이 자리 술값은 내가 내야하는구나’ 쯤은 눈치채야한다. 아무래도 가장 웃기는 유머는 권력자의 유머이리라. 요즘 세상에 대접만 바라고 선심 쓸 줄 모르면 꼰대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윗선 어디쯤에선 총구에서 권력이 나오는지 모르지만 지갑에서 권력이 나오는 게 저자거리 인심 아니던가.

‘안젤리나 졸리’만큼 졸음을 확 달아나게 하는 배우도 드물 터이다.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관상학은 아주 오래된 과학”이라고 했다. 얼굴 자체를 천성과 이력의 비밀을 오롯이 드러내는 하나의 표징으로 본 셈이다. 관상을 제대로 해독할 수 있는 경지는 드물다지만, 졸리는 남자 비위나 맞추며 부지해가는 청순가련형과는 거리가 먼 인상임에 틀림없다. 군살 없는 단단한 체격, 마음속까지 꿰뚫듯한 또렷한 눈매, 야성을 도발하는 두툼한 입술, 고집스레 보이는 강한 사각 턱. 사람을 압도하는 미모다. 졸리는 외모뿐만 아니라 인생도 독보적이다. 태어난 지 1년 만에 부모는 이혼. 자해, 마약, 추문, 잦은 자살시도로 얼룩진 성장기.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지독한 불운만큼이나 행운도 겹쳐 최고의 흥행 배우로 등극하고 그 유명세와 함께 다양한 인도주의 활동에 열성을 보이더니 “할리우드 최고의 가십 걸”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신했다. 2012년에는 <피플>지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인물” 1위로 선정되었다.

안젤리나 졸리가 인생의 반전을 꾀하게 된 데는 캄보디아 영향이 컸다. 촬영지가 앙코르와트였던 영화 ‘툼 레이더’를 계기로 캄보디아 고아 매덕스를 입양하면서부터 운신의 품이 달라졌으니. 아들의 조국을 돕기 위한 자선 활동을 시작으로 국제사회의 소외된 인권문제에까지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그 후 얘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매덕스에 이어 베트남과 에티오피아에서 두 아이를 더 입양하고 브래드 피트 사이에 세 아이를 낳아 6남매를 거느린 엄마가 됐다.

졸리는 영화각본 작업과 영화감독 일도하고 있다. 현재 그녀는 캄보디아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로웅 웅의 자전적 소설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 (First They Killed My Father)” 영화 제작에 한창이다. 배우가 직접 영화 제작에 나설 때는 영화사에서 받아줄 것 같지 않은 주체적인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졸리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의 정체성을 찾아주기 위해 캄보디아 역사물을 택한 것 같다. <르 몽드>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신분상승 기회는 쇼 비즈니스(연예, 공연업) 정도밖에 안 남았다고 보았다. 사람을 움직이는 능력이 권력이라면 정치계나 경제계의 권력과 마찬가지로 문화계의 영향력이나 매력도 권력에 속하지 않을까싶다. 안젤리나 졸리 개인이 이렇듯 눈부신 성과를 올리고 여전히 잘 이끌어갈 수 있는 것도 ‘매력의 힘’ 아니겠는가. 졸리의 영향력으로 보아 어느 정도 흥행은 보장된 것 같은데…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