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캄보디아의 술 문화

기사입력 : 2016년 03월 03일

“무슨 방송국인데 곳곳에 저리 많아요?”

캄보디아에 처음 온 분이 프놈펜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KTV 간판을 보고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KTV가 술집이란 것을 모르니 당연히 그렇게 물을 수밖에. 도우미와 술이 있는 노래방이라는 것을 알고는 신기해했다. 그러고 보니 요 몇 년 사이에 KTV가 엄청나게 늘었다. 4~5층짜리 대형 건물 한 채가 몽땅 KTV로 영업하는 곳도 꽤 많다. 저녁마다 건물 주변에 차량들이 즐비하게 늘어설 정도로 이용객으로 붐빈다. 한 때는 무명 가수가 나오는 노천 맥주집인 비어가든이 유행처럼 곳곳에 포진해 있었는데 비어가든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KTV가 번성하고 있다. 술꾼들의 취향이 바뀌어 간다는 의미와 함께 술과 여흥에 대한 지출 여력이 그 만큼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서민들은 이와 거리가 멀다.

캄보디아 사람들 중에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의 비중이 낮은 편이다.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 가도 가볍게 한 잔 하는 것이 보통이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독한 술보다는 맥주 같은 순한 술을 주로 마시고, 술꾼이라 하더라도 폭주를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맥주에 의례히 얼음을 넣어서 마시는 습관이 있어서 물 반 맥주 반의 술 문화가 대세다. 항상 더운 날씨 때문에 이런 술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10여 년을 캄보디아에 살면서 밤이건 낮이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특히 여자들은 맥주 한 잔 조차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캄보디아 전통주 중에는 매우 독한 술이 있다. 쌀로 술을 빚어 알콜을 증류해 낸 술로, 한국의 법주나 안동소주와 비슷한 술이다. 주로 시골 사람들이 집에서 만들어서 가용주로 즐겨 마신다. 요즘은 도회지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양주나 고량주 같은 독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는다. 그렇지만, 이 술을 마시고 탈이 나는 경우가 있어서 각별히 조심해서 마셔야 하는 술이기도 하다. 술을 빚는 과정에 알콜 도수를 높이기 위해서 공업용 알콜을 사용하여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런 술을 마시고 1년에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한국보다 인구도 적고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시중에서 팔리는 맥주만큼은 한국보다 훨씬 다양하다. 캄보디아 자국 맥주도 여러 종이 생산되고 외국의 웬만한 맥주는 다 들어와 있다. 자국 맥주와 함께 수십 종의 외국 유명 맥주가 판매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물론 한국 맥주도 팔린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한국 물품을 선호하지만 맥주만큼은 수십 종의 맥주 중에서 선호도상 꼴찌에 가깝다. 캄보디아 맥주에 맛을 좀 들이면 한국인조차도 한국 맥주를 찾지 않는다. 술꾼이 아니라서 평가는 잘 못하겠지만 한국 맥주가 캄보디아 맥주의 상큼한 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요즘은 한국의 소주가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점점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몇 년간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온 근로자들이 즐겨 찾던 술이 일반인들에게까지 퍼지고 있다. 맥주보다 조금 독하면서도 뒤끝이 깨끗하고 값이 싸서 소주를 찾는 게 아닌가 한다. 또, 한국에서 들어오는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 서민의 술인 소주와 막걸리가 캄보디아 서민들에게도 잘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