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거나

기사입력 : 2016년 03월 03일

프놈펜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집에서 쉬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 보니 음력설이라 선생님들이 쉬어서 2주 동안 수업이 없다고 했다. 중국어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2주 동안 쉰다는 것은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는 대학생들이 걸핏하면 학교에 가지 않아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선생님이 바빠서 그렇거나 선생님이 아파서 그렇다는 대답을 흔히 듣는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친척이나 친구가 결혼이라도 하면 학생들은 수업 전폐하고 파티 참석하기 일쑤다. 그래도 기간이 차면 학년이 올라가고 졸업을 하니 대학에서 무엇을 얼마나 배우는지 궁금하다.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선생님 중에서 두 명이 고등학교 교사다. 한 사람은 토요일에만 학교에 나가서 학생을 가르치고, 또 한 사람은 1주일에 두어 번 학교에 나가서 두세 시간 있다가 돌아온다. 그렇지만 학교의 교사로서 직분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월급도 꼬박꼬박 받는다. 이른 아침에 학교에 나가서 오후까지 수업을 하고 퇴근 시간이 되어야 학교를 나서는 한국의 교사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캄보디아에서는 학교마다 이런 교사가 꽤 있다고 한다. 물론 교사가 학교 밖에서 과외에 치중하거나 전혀 다른 일에 종사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2년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젊은이가 있다. 오전 8시에 업무를 시작해서 11시부터 점심시간인데, 점심시간에는 꼭 집에 들어와 밥을 먹고 쉬다가 다시 출근한다. 오후 2시에 오후 업무가 시작되니까 점심시간이 3시간이나 된다. 물론 5시면 어김없이 퇴근한다. 이 친구가 지난주부터는 대학원에 등록했는데 수업 시간은 오전이고 사무실에는 오후 1시까지 출근하면 된다고 한다. 오후에만 출근해서 일하는 공부원이 된 셈인데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공직에 적만 달아 놓고 일은 밖에서 하는 공무원이 있기도 하니까 가능할 것도 같다.

청소하는 여직원이 조부상을 당해서 고향에 내려갔다. 월금을 가불해 주고 조의금을 줘서 보냈다. 3,4일이면 돌아오겠거니 하고 기다렸는데 5일째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 직원을 시켜서 전화로 확인해 보라고 했다. 어제 올라오려고 했는데 차편이 없어서 오늘 올라올 거라고 했다. 휴가 기준을 세워 놓아도 그렇게 지키기 어려워서 직원들 애경사가 있을 때마다 늘 신경 쓰는 문제다. 직장에 몸을 담고 있어도 집안일을 우선으로 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의식을 넘어서서 내 주장만을 고집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결국 나만 손해다.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오랜 기간에 걸쳐서 터득했다.

캄보디아 사람들과 무슨 약속을 하면 정해진 시간에 나오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그래서 기분이 상할 때도 있지만 너그럽게 참는 게 정신 건강상 좋다. 시간에 맞춰서 살 수 밖에 없는 산업화 사회에 익숙하지 않고 시간을 안 지켜도 별로 손해 보는 일 없이 살던 사람들이라 그렇다고 본다. 일을 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목표에 맞춰서 어떤 것을 해 내는 업무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업무의 질보다는 업무 시간에 따른 보상에 기준을 둔다. 시스템을 기반으로 조직화 되고 성과에 따른 보상 체계가 일반화 된 현대 산업사회의 법칙을 지금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강제할 수는 없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공부의 영역에서나 일의 영역에서나 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