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 칼럼] 움베르토 에코

기사입력 : 2016년 03월 03일

‘눈을 통해 우리 몸속에 들어오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들뜨거나 혼자 있고 싶어 하거나 공연히 심술을 부리거나 말수가 적어지기도 한다. 특정인의 이름에서 맥박이 빨라진다. 병이 악화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 병이 괴질인 까닭은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치료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 소설 <장미의 이름>에 서술된 ‘상사병’이다. 치료방법도 나와 있다. 한 사람은, 상사병 대상과의 결합이 유일한 치료 수단이라고 한다. 또 다른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을 잘라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에코가 다른 책에서 감칠맛 나게 인용한 대목이다. 대단한 독서가였던 그가 자신의 저서 상당부분은 기존 저작물에서 발췌한 문장과 단어들을 재구성한 2차 창작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용 솜씨만으로도 작가의 감각을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아끼는 보물로 “희귀 고서적 컬렉션”을 꼽았던 움베르토 에코. 케케묵은 책에서 상사병에 대한 기록을 발견하고 싱글벙글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미혼 시절에는 버지니아 울프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남자라면 결혼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은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여자라면 제법 통하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우린 결국 <장미의 이름>에서 합의점에 도달했다. 언제부턴가 소설에 흥미를 잃었는데 이 책은 읽고 또 읽었다. 두 번째 읽었을 때가 처음 읽었을 때보다 재미있기로 몇 안 되는 소설 중 하나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에코는 ‘이론화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했다. 시대사조가 신비주의에서 이성주의로 흘러가면서 천상권력과 지상권력 간 갈등이 심해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14세기 중세를 배경으로, 신과 악마, 진리와 허구, 사랑과 증오 같이 언표 불가능한 주제를 추리소설 형식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았다. 소설 외에도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같은 수필집도 발표했다. 에코의 글을 읽다보면 중세 역사와 철학, 기호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버겁다 싶은 부분도 많지만 무해한 신랄함과 발군의 유머감각, 아이 같은 솔직함에 매료되고 만다. 단단한 내공에서 나오는 해학이랄까, 어쨌거나 그는 뇌를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움베르토 에코가 타계했다. 향년 84세. 그는 “책들은 언제나 다른 책들에 대하여 말한다”고 했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책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책에 대해 말하고, 토마스 아퀴나스를 읽으면 아베로에스가 뭐라고 했는지도 알 수 있듯이, 장서관이란 수세기에 걸쳐 서책끼리 음울한 속삭임을 주고받는 장소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조갑제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책을 써내자, 진중권이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책으로 응대했듯이. 자신이 재직했던 볼로냐 대학 도서관의 모든 책의 위치를 기억했던 움베르토 에코는 ‘세상의 모든 지식’으로 통했다. 그의 작품에 말을 걸어오는 책에 대해 이제 더 이상 명쾌하고 유쾌한 답변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