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칼럼] 티모르의 추억

기사입력 : 2014년 07월 07일

오래 전, 우연한 기회에 동 티모르를 갔었습니다. 우선 싱가폴로가서 정말 후덜덜한 가루다 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발리의 덴파샤르공항에 간 다음, 엄청 오래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동티모르 딜리 공항에 내렸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비행기가 바로 바다로 이륙하더군요. 새파란 바다 위를 바로 올라가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짜릿했습니다.

당시 동티모르는 참 암담하더군요.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연, 그러나 척박하기 이를 때 없는 자연환경. 산속에는 아직도 무장 게릴라들이 판을 치고, 초라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두려움의 일상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주름진 얼굴에는 고된 삶의 흔적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참 순진하고 소박하더군요. 최첨단의 컴퓨터 판때기를 두드리는 나와 작살에 고기를 꿰고 가는 저 문신의 사나이가 사는 의미가 절로 생각이 된다는 말이지요.

어떻게 이런 곳까지 사람이 와서 살아야 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의 좋은 땅 다 놔두고 왜 이 가파른 산기슭에서 살아가야 하는지요. 아마 무슨 무슨 이유로 이곳으로 흘러 왔거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찾아 왔거나… 아니죠. 쫓겨 왔겠죠. 전쟁에 패배해서, 삶에 지쳐서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러나 그렇다 해도 산밖에 없는, 땅뙈기라고는 손바닥만 하고 해변은 산호초와 암초로 덥히고 1년에 반은 건기가 되어 농사지을 물도 없는 이곳에 스며든 그 인생이 이제는 문명에 쫓겨 산으로, 산으로 산속으로 파고들어 숨어 사는 것인가 하는 거지요.

작살에 생선 한 두 마리 꿰어 메고 돌아가면 불을 피워놓고 기다리는 아내와 주렁주렁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자랑스레 물고기를 풀어놓고 바나나 익어가는 냄새에 하루의 피로가 뭏혀 버리겠지요. 삶을 자연에 맡겨버리는 삶. 그래서 그는 환상을 쫓고 먼 세월의 선조를 생각하고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숲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속삭임”이라거나 딸의 이름을 ” 흐르는 냇물의 영혼” 혹은 “슬픈 저녁의 울음”이라고 지었겠지요.

이런 생각을 하면 우리는 참 모질지요. 잘 살려는 욕망이 참 우리를 모질게 만들고 우리의 영혼을 척박하게 만들죠. 그냥 그럭저럭 살려고 하면 문제가 완전히 달라지는데요. 그렇죠. 살려는 것과 잘 살려는 것이 이렇게 사는 방법과 의미를 바꾸는군요.

잘 살기 위해 그냥 살려는 사람을 밟아야 되는 이 세상이 정말 바람직한 세상인가요? 진실로 인간이 무엇이길레 이렇게도 모질게 죽이고 짓밟고 그리고 슬프게 하는 건가요? 우리는 진정 자신의 것을 조금씩 나눠주는 그런 나눔과 코이노니아의 세상을 만들 수는 없는 걸까요? / 정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