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버킷 리스트

기사입력 : 2012년 06월 05일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온갖 인간군상을 엿볼 수 있고, 직접 체험이 가당치 않는 세계로도 냉큼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떤 아비규환 속에 빠지더라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감과 동시에 안전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호기심은 많으나 모험심이 부족한 나 같은 겁쟁이에겐 제격이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목록’을 뜻하는 <버킷 리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말기 환자인 두 노인의 얘기로, 병원에 누워 죽을 때를 기다리느니 못해본 일이나 해보다 죽자며 병원을 뛰쳐나와 모험의 세계로 향한다는 빤한 스토리다. 클래식카 레이싱, 프로펠러 비행, 호화 만찬…모두 거액의 돈이 있어야만 가능한 목록설정이 조금 어설픈 영화다.
  
<마누라 암리스트3>이 거론되는 영화도 있다. 초로의 두 남자가 커피숍에 마주 앉아, ‘만약에 마누라가 암으로 죽으면 결혼하고 싶은 여인 1, 2, 3′을 꼽으며 서로 중복됐는지 안 됐는지를 두고 킥킥댄다. 이 장면 외에 생각나는 게 없는 시시껍적한 영화다. 유독 이 신만 기억에 남는 이유는 우리가 알고 싶어 안달하는 진실이란 저런 모습이 아닐까, 가슴 서늘했던 느낌 때문이리라. 진실이란 생각보다 섬뜩하고 상처가 있게 마련인 것이다. 먹음직스러워서 한 입 베어 문 복숭아 속에 벌레가 꿈틀거리듯.(모르고 넘어가는 게 대수다)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밝힌 버킷리스트에는, 부적절한 관계로 물의를 일으켰던 르윈스키와 트위터에서 만나고 싶다는 항목과, 아내 힐러리와 되도록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항목이 나란히 들어있다고 한다. 그의 ‘마누라 암리스트1′은 루윈스키일른지도 모른다.(남자들이란)
 
 나는 ‘버킷 리스트’로 꼽고 싶은 것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뭔가 해서 행복감을 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 행복이라는 것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고야 얻어졌던 내 기억이 맞는다면, 냉탕온탕의 세계에 부러 뛰어들고 싶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혹자는 프놈펜을 늪 같은 도시라고 말한다. 서둘러봐야 되는 노릇도 없고, 기다리다보면 안 되는 노릇도 없는 프놈펜. 께느른한 날씨와 느슨한 체제가 경쟁에 찌든 심신을 스물 스물 빠져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일 년 내내 여름 한철이라 그런지, 시간도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올 해 일이었는지 작년 일이었는지, 추억 또한 자리 잡지 못하고 망각 속으로 사라지곤 한다. 버킷 리스트고 뭐고, 그저 그날그날 주어진 소임을(제발, 설레는 일이 주어지기를…)마치고, 프놈펜의 노을을 바라보며 석양주나 홀짝이는 평범한 술꾼으로 살고 싶은 것을 어쩌랴. / 나순·건축사
 
 


 

*뉴스브리핑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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