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도둑 없는 곳은 없지만

기사입력 : 2012년 05월 03일

 

몇 년 전의 일이다. 상담을 받으러 학교에 왔던 예비 학생 하나가 상담을 끝내고 나가다가 황당해 하는 얼굴로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현관문 밖에 세워 둔 오토바이가 없어졌단다. 안에 들어와 머문 시간이 불과 10여 분밖에 안 되고 오토바이에 자물쇠까지 채워 놓았는데 그 사이에 누가 오토바이를 감쪽같이 가져간 것이다. 잃어버린 사람의 허탈해 하는 얼굴을 보면서 나도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한 학생이 볼일을 보러 가느라 차를 하루 밤 학교에 맡긴 적이 있었다. 나중에 보니까 차를 주차장이 아닌, 현관 안에 들여놓고 가서 직원을 불러 혼을 냈다. 내 차도 건물 안에 주차를 하지 않고 밖에 있는 주차장에 두는데 남의 차를 신주 단지 모시듯 현관 안에 모셔 놓았기 때문이었다. 직원이 이런 저런 이유를 댔지만 도저히 납득이 안 갔다.

그러나, 몇몇 사례를 접하면서 캄보디아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차차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언젠가 아는 사람과 은행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그 사람 차의 백미러가 사라졌다. 바로 옆에 내 차가 주차되어 있었지만 나의 운전사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백미러를 떼 간 것이다.

프놈펜에서 밤에 차를 밖에 세워 놓고 자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토바이도 마찬가지다. 다 집안에 들여 놓는다. 차고가 따로 없는 집은 현관이 주차 공간이다. 어디 그뿐인가. 어느 집을 막론하고 높은 담장과 견고한 철문은 기본이다. 어떤 집은 담장 위에 철조망까지 쳐져 있다. 창문에는 어김없이 방범 창살이 드리워져 있어 안에서 화재가 발생해도 출입문 이외에는 탈출구가 따로 없다. 밖에서 보면 주택이 마치 감옥 같기도 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도 다르지 않다. 밖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사무용 건물이지만 침입자(?)가 내가 거주하는 방안에까지 들어오려면 다섯 개의 열쇠가 필요하다. 건물 외곽의 철문을 열고 셔터를 올리고 현관문을 열고 거실 문을 열고 방문을 열어야 한다. 거꾸로 생각하면 아주 견고한 감옥 안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이다.

캄보이아에 와서 모토(오토바이 택시)나 뚝뚝이를 탈 때 가방을 조심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날치기 사고가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서도 여러 사람이 그런 경우를 당했다. 하루는 학교에서 강의를 끝내고 모토를 타고 귀가하던 선생님 한 분이 가방을 빼앗겼다. 오토바이를 타고 모토를 뒤 따라와 가방을 낚아채 달아났다고 한다. 다행히 가방 속에는 학교에서 쓰는 교재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하마터면 모토에서 떨어질 뻔했다고 한다. 또 내가 아는 어느 분은 뚝뚝이를 타고 가다가 가방을 날치기 당해서 돈과 소지품을 몽땅 잃어버렸다. 여권을 다시 만드느라고 무진 고생을 했다고 한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도둑 없는 곳이 어디 있으랴. 유형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하수도 뚜껑이 밤 사이에 없어지는 절도 사건이 일어나고, 농수산물 도매 시장에서 가격이 오른 농산물을 훔쳐가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부의 양극화와 실업자 증가에 따라 생계형 범죄가 늘어난다는 얘기도 들린다. 남을 경계하고 문을 꼭꼭 걸어 잠그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까지 닫게 된다.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차를 세워 두고 자도 아무렇지 않은 날이 캄보디아에서는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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