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칼럼]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안전 대한민국’

기사입력 : 2014년 04월 22일

우리는 침몰한 세월호 옆에 대한민국의 안전 시스템이 함께 침몰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고가 일어난 것부터 운항사의 대응, 구조 과정과 사후 대책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믿기 어렵고 이 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웬만한 풍랑에는 요동치지도 않을 길이 146m, 6825t의 거대한 배가 풍랑도 폭풍도 없는 맑은 아침에 갑자기 옆으로 기울어 가라앉은 것부터가 믿기지 않는다. 침수가 시작된 뒤부터 완전 침몰할 때까지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이 취한 조치와 행동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상황을 오판하고 오보를 날리는가 하면 사고 24시간이 지나도록 탑승 인원조차 정확히 집계하지 못한 당국의 모습에는 할 말을 잃는다.

경찰은 세월호의 과도한 변침(항해 방향을 바꾸는 것)이 침몰 원인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항로를 변경하려고 무리하게 뱃머리를 돌리는 순간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무게 중심을 잃고 기울어져 침몰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세월호 참사 역시 운항 과실, 즉 인재로 귀결되는 것은 소름 돋는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형 여객선을 탄 사람의 안전은 선장과 항해사가 실수하지 않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고 발발에서 완전 침몰까지 세월호 운항사가 취한 조치와 행동은 미스터리에 가깝다. 구조 요청 최초 신고자가“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학생의 연락을 받은 학부모였던 것부터가 이상하다. 운항사 측은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도 수차례나 “선실에서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으로 오히려 승객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운항사 측의 이런 이상한 조치가 가공스러운 결과로 이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배와 승객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승조원들이 먼저 탈출한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사고가 나면 자동적으로 작동해야 할 구명보트조차 46개 가운데 2개밖에 펴지지 않은 것은 또 무슨 연유인가. 세월호의 안전 시스템은 선체가 침몰하기 전에 이미 파탄나 있었던 셈이다. 세월호 참사로 제주도 수학여행 길에 오른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이 대거 희생된 것은 가슴을 칠 노릇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실종자 가족들에게 구조에 전력을 다할 것을 약속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말처럼 사고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 소재 규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간의 여러가지‘있을 수 없는 일’들에서도 드러났듯이 모든 사고에는 안전불감증과 인재(人災)가 개입돼 있다. 하지만 거창한 구호와 일시적 관심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책에 다가갈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 사회 각 부문은 세월호 실종자 구조를 위한 노력과 성원을 침몰한 대한민국의 안전을 구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 경향신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