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칼럼] 4월이 오면 아프게 생각나는 사람들

기사입력 : 2014년 03월 31일

나는 언제나,
동 터오는 새벽의 불그스레한 여명이 슬프다.

” 앞으로 일체의 유신헌법에 대한 비방이 금지됩니다.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면 엄중히 처벌됩니다. 또한 위반 내용을 방송에 보도해서도 안됩니다. 향후 5명 이상이 모이는 집회는 반드시 당국의 집회 허가를 받아야 하며…. 위반자는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해지고,,,,75년 5월 13일. 방송을 타고 나오는 이 무서운 말들에 사람들의 얼굴은 두려움을 넘어 질려있었다. 유신 헌법에 대한 부정적 논의를 금지한, 74년 1월의 긴급조치 1호에 이은 국민들의 일체의 집회 결사의 자유와 언론 출판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박탈하는 조치였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대학을 다녔던 대한민국의 참 모습이었다.

74년에 입학, 열린 귀를 어찌할 수 없어 끼게 된 데모판. 최루탄이 내 눈앞에서 터져 실명을 할 뻔한 아찔했던 순간들. 그리고 아무런 이유 없이 경찰서에 끌려 다니고, 두드려 맞고 또 기절했던 세월. 이어 75년에 맞은 긴급조치, 위수령 그리고 이제는 기억도 안 나는 군인들이 쳐들어 온 사건.

76년 여름에 군대에 갔다. 재수 없는 놈은 군대 복도 없다. 무슨 일인지 군단을 뛰어 넘어 전출을 당했다. 아마 쫄병이 군단을 넘어 전출당한 사건은 남한산성 징역에 해당하는 군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79년에 복학. 공부 좀 하나보다 했더니 12.6. 이어 전두환이 정승화를 죽인 12.12. 이어진 ‘본인은…’으로 유명한 전두환 장군의 국가 보위 위원회. 국보위-(나는 그 말이 북한에서나 쓰는 말인 줄 알았다.)

이어 살아있는 나를 부끄럽게 했던 5.18. 아직도 가슴에 살아있는 아픔인 두 친구의 죽음, 세 친구의 안타까운 부상. 그래서 나는 언제나 붉은 동이 터오르는 지금이 슬프다. 지워지지 못하는 젊은 날의 흉터다. 그렇다. 죽어야 할 때 죽지 못하고 살아남아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병들어 아내를 아들을 딸을 고생시킨 … 나는 살아있음이 슬펐던, 지랄 같던 시대의 아픔이었다.

몇 년전 한국에 갔을 때, 먼저 가버린 그 못난 친구가 천하에 못되게 약혼한 여자 뱃속에 씨를 하나 숨겨 두었다. 씨는 고려대 법학부 학생이 되어 나를 찾아 왔었다. 그리고 아빠를 물었다. (차라리 고문을 해라.)

이제는 잊혀질 때도 되었건만, 4월만 되면 떠오른다. 먼저 간 친구, 같이 가지 못해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여자 또 여자. 모진 세월을 견디어 살아남아 사랑만을 파먹고 살아가는 삶. 그래, 이제 나도 잊어야 한다. 새벽별을 보는 버릇도 없애야 한다. 나도 한번은 크게 숨 쉬고 살아봐야 할 것 아닌가? /정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