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물과 씨름하면서 산다

기사입력 : 2013년 10월 30일

얼마 전에 큰비가 내려 가슴을 졸인 일이 있었다. 학교 야외 주차장이 무릎 정도까지 물에 잠기고 지하실 문턱까지 수위가 높아져서 하마터면 지하실에까지 물이 들어올 뻔했다. 우기 내내 비가 내렸어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전과 달랐다. 다행이 그 뒤 며칠 동안 비가 더 내리지 않아 사오일 만에 물이 다 빠졌다. 바로 담장 밖이 늪지대라서 비가 내리면 여기저기서 흘러든 빗물이 그곳으로 모이는데 언제나 하수가 역류하기 직전까지 물이 차다가 멈추고 며칠이 지나면 서서히 수위가 낮아지는 게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늪지대가 거의 사라져서 앞으로는 그 사정이 달라질 것 같다.

늪지대의 대부분이 택지로 바뀌었고 한쪽에는 차례로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문제는 아무리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한쪽에 남은 늪지대의 물이 흘러 내려가는 하수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집을 살펴봐도 집안에서 빠져나가는 물이 모여서 흐르는 하수관로가 통 보이지 않는다. 우기라 하더라도 잠깐 동안 비가 내리고 곧 멈추고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강한 햇볕에 증발해 버리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우기가 시작될 무렵의 일이다. 아는 분이 새 집을 얻어 이사를 한 지 며칠이 안 돼 밤 사이에 내린 비로 집안이 침수돼서 큰 낭패를 본 일이 있었다. 집주인에게 항의를 해 봤지만 그런 일은 처음 당한다는 변명만 들어야 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집 주위에 새로 집들이 들어서면서 옛날에 지은 그 집보다 집터를 높게 돋웠기 때문에 사방에서 빗물이 흘러들어 그런 현상이 생긴 것이었다.

요즘 프놈펜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그런 예를 흔히 볼 수 있다. 나중에 지은 집 앞은 지대가 높아서 지반이 뽀송뽀송한데 반해 지은 지 오래된 바로 그 옆집 앞은 진흙탕인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아 비가 내리면 빗물이 그곳으로 고이기 때문이다. 하수로가 없으니까 서로 다투어 집터를 높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어느 지역에서는 비가 내리면 도로가 온통 수로로 변해서 차량 통행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처음 도로를 낼 때에는 주변보다 높게 만들었지만 나중에 옆으로 들어선 건물들이 지반을 더 높여서 지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요즘 프놈펜 시내 곳곳에서는 집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어디를 막론하고 처음에 하는 일은 트럭을 이용해서 흙을 갖다 붓는 일이다. 건물을 지을 때 땅값보다 흙 값이 더 드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 캄보디아에서는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캄보디아의 1년 강수량은 한국과 비슷하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기상이변에 의한 집중호우가 빈번해서 홍수 피해가 심해졌다. 재작년에 이어 올해도 곳곳이 침수되어 막대한 재산 피해와 인명 피해를 입었다. 그렇지만, 우기에도 오히려 물이 부족해서 고생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캄보디아다. 그래서 비가 자주 내리는 우기를 캄보디아 사람들은 아주 좋아한다.

얼마 전부터 가끔 동풍이 불기 시작했다. 우기 내내 서쪽이나 남서쪽에서 바람이 불고 이것이 구름을 몰고 와 비를 쏟아 내곤 했었는데 요즘에는 구름이 동쪽에서 몰려오기 일쑤다. 대개 한창 달구어지는 오후에 비가 내리는 게 보통지만 요즘은 비가 내리는 시간도 들쭉날쭉하다. 우기가 곧 끝난다는 징조다. 비가 자주 내려서 시내 곳곳이 진흙탕이나 물웅덩이로 변하고 더러는 집안까지 물이 차기도 하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은 별로 불안해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 표정이다. 물과 씨름하면서도 그것을 반기고 즐기면서 사는 듯이 보인다. / 한강우 한국어전문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