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사토리 시대

기사입력 : 2013년 10월 30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사방이 물에 잠겨있었다. 더한 비에도 이런 적이 없었고 밤새 비 기척도 없었는데, 배수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 프놈펜의 홍수는 놀랍게 차올랐다가도 이내 빠지기 때문이다. 타고난 방안퉁수로 며칠이고 현관 밖에도 안 나가는 때가 많은 사람이나 도로가 다 잠겨 외출하기 어렵겠구나 싶어지니 갑자기 섬에 유배라도 된 느낌이었다. 소풍 나온 어린애가 즐겁게 잘 놀다가도 미아가 되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에는 엉엉 우는 법이라더니.

늦게야 출근한 직원들은 집에 물이 정강이까지 차올랐다며 지각의 변을 늘어놓으면서도 해죽해죽 캄보디아인 특유의 밝은 표정이다. 연일 비가 소강상태인데도 학교가 휴업 할 정도로 배수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으로 보아,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임에 틀림없었다. 대책 없이 수재민이 된 직원들 처지가 안타까워 행정과실을 밝혀내면 보상 받을 수도 있지 않겠냐 했더니 물이 차는 게 대수냐는 식으로 의아해한다. 언젠가 인부를 현장숙소로 들일 때 해먹과 모기장에 작은 보따리 하나가 짐의 전부였던 것을 생각하면, 부처님의 무소유 삶에 가까운 살림이라면 웬만한 자연재해에는 무심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재산을 일궈야겠다는 욕심도 없고 장래 포부도 없고, 원하는 게 없는 사람이야말로 걱정근심 없는 행복한 사람이란 말은 캄보디아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인 듯싶다.

일본에는 사토리 세대가 있다고 한다. 요즘 20대에 해당하는 사람들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동안 자산붕괴, 가계부채, 고용불안, 내핍 등, 고통에 허덕이는 부모세대를 목격하며 성장했다. 막 부를 거머쥔 듯했다가 곤두박질칠 때만큼 빈곤감과 절망감에 사무칠 때도 없으리라. ‘사토리’란 불교의 ‘해탈’에 해당하는 일본어로 풍요로움의 신기루를 쫒는 자본주의의 버거운 굴레에 대해 너무 일찍 깨달아 버린 세대를 일컫는다. 이들은 소비에 관심이 없고 돈을 벌겠다는 의욕도 없을뿐더러 세상 이목 따위에도 상관하지 않는다. “꿈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사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풍요를 경험한 후 나타난 신드롬이지만 삶에 대한 성취욕이나 패기가 부족하다는 면에서 캄보디아 청춘들과 비슷하다.

세계 제일 부자나라 미국이 국가 부도 위기에 놓여있다고 한다. 끊임없는 기업 짝짓기로 즉각적인 이윤창출 외에 사회문제를 방관했던 신경제 체제의 몰락,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이 인간다운 삶을 상실했던 것처럼,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버블붕괴의 질곡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장기침체에 의한 부익부빈익빈까지 고착화되어 꿈을 꾸는 것조차 조소꺼리가 되는 세상이 오면, 지구촌 곳곳에 사토리세대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하긴 해탈한 사람들은 만사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하니 부(富)라는 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려나? 비가 좋아 빗속을 걷는다면 낭만적인 기분에 젖겠지만, 오로지 우산 살 돈이 없어서 그런다면 기분이 참담할 터이니.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