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민심을 깨달아야 할 때

기사입력 : 2013년 09월 19일

한국 취업 근로자 선발을 위한 기초 한국어 능력 시험(EPS TOPIK)이 9월 28일, 29일 양일에 걸쳐 치러진다. 그런데, 시험이 시행된 후 지금까지 줄곧 프놈펜에서 보던 이 시험을 이번에는 시엠립 바탐방 스와이리엥 타케오 등 지방 여러 곳으로 분산해서 치른다고 한다.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후 선거 부정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며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있는 야당의 집회와 시위 때문이다. 프놈펜에서 시험을 치른다 해도 시험장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사람이 모이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훈센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한다.

이에 따라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캄보디아센터)의 고충이 커졌다. 이전 시험에 비해 응시 희망자가 대폭 증가한데다가 시험을 지방으로 분산해서 치르게 됐기 때문에 시험 관리가 그만큼 복잡해진다. 한국에서도 여러 명의 시험 관리관들이 시험에 맞춰 캄보디아에 들어오고 프놈펜 거주 한국 교민들 다수가 시험 감독에 동원되곤 했는데 지방으로 분산해서 시험을 치르게 되면 시험 관리가 이전에 비해 훨씬 어려워진다. 어느 시험을 막론하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시험 부정이 만연한 캄보디아에서 시험 관리를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예전같이 한국인 보조 인력을 맘대로 쓸 수도 없기 때문에 그렇다.

지난 9월 초순에 있었던 시험 응시자 등록을 각 지방으로 분산해서 받는 바람에 시험 준비를 해 온 젊은이들을 매우 당황하게 만들었다. 프놈펜이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교통비와 숙식비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일부는 직장에 휴가를 내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은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다. 이들 대부분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다. 프놈펜에 올라와 직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한국어를 공부해서 시험을 보는 젊은이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런데, 등록에 이어 시험까지 지방에서 치러야 하니 이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 곳에 1만 명 내외가 시험을 보기 위해 모이게 되는데 이 중의 상당수는 미리 그 곳에 가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시험을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시엠립을 제외하고는 수천 명이 동시에 머무를 수 있는 숙박 시설을 갖춘 곳은 없다. 기껏해야 몇 백 명 정도다. 또, 프놈펜과 몇몇 큰 지방 도시를 잇는 버스는 있지만 지방과 지방을 잇는 대중교통 수단이 거의 없는 나라가 캄보디아다. 그래서 미리 시험 장소 인근에 가서 숙박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토바이를 타고 시험장까지 가야 한다. 대부분 비포장 시골길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두세 시간 이상 오토바이를 타야 하는 사람도 많다.

권력을 쥐고 있는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국민들의 불편과 희생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전형적인 사례다. 어디 이것뿐인가. 서류 하나 발급받는데도 의례히 뒷돈을 내야 하고, 사고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뒷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도움을 받기 어렵다. 요소요소에서 빚어지는 이러한 행태가 국민들이 자신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요인이라는 것을 위정자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선거를 통해 그 동안 억눌려 살던 민초들의 의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변화’를 기치로 내 건 야당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며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다. 민심을 깨달아야 할 때다.   / 한강우 한국어전문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