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비가 좋은 사람들

기사입력 : 2013년 09월 09일

Heavy Downpour

요즘에는 이틀이나 하루에 한 번꼴로 비가 내린다. 우기에는 대개 서풍이 불고 서쪽에서부터 비구름이 몰려와 비를 쏟아내는 게 캄보디아의 전형적인 우기 풍경인데 어제는 동남쪽에서 비구름이 몰려왔다. 캄보디아의 날씨는 거의 매일 똑같다. 아침에는 맑은 하늘에 햇볕이 쨍쨍 나다가 하늘 가장자리에서부터 서서히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그것이 먹구름으로 바뀌면서 삽시간에 세차게 비를 뿌린다. 우기에는 보통 오후에 비가 내리는데, 우기 막바지에 이르면 아침이나 밤에도 비가 내리는 경우가 있다.

캄보디아의 우기는 5월 중순쯤 시작된다. 우기가 시작되기 전 두세 달의 건기가 캄보디아에서는 가장 더운 시기인데, 올해는 6월 중순까지 비가 별로 내리지 않고 날씨는 시원한 편이었다.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은 예년에 비해 시원해서 좋았지만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고통을 겪었다. 비가 내려야만 농사를 짓는 천수답이 많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볍씨 파종이 예년에 비해 한 달 이상 늦어져서 올해 캄보디아 전체로 볼 때 쌀 생산량이 전년도에 비해 감소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들린다. 캄보디아 인구의 80%가 농촌에 거주하고 그들의 주요 소득이 벼농사에서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이 갈 것이다.

강수량은 캄보디아 사람들의 생활 전반을 지배한다. 비가 적게 내리면 식수와 생활용수가 부족해서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된다. 상수도가 있는 몇몇 도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빼고는 대부분의 캄보디아 사람들이 지하수나 빗물을 이용해서 살기 때문에 건기가 되면 늘 물 부족에 시달린다. 지하수에는 석회질이 많고 각종 중금속이 함유되어 있어서 식수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 많다. 그래서 캄보디아 사람들은 집집마다 커다란 항아리를 구비해 놓고 우기에 빗물을 받아 놓았다가 건기 동안 식수로 쓴다. 무더운 날씨에 땀으로 범벅이 되어도 제대로 씻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강수량은 농사나 생활용수뿐만 아니라 수산업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먹는 어족 자원의 80% 정도는 강이나 호수에서 잡히는 민물고기다. 메콩강과 톤레삽 호수가 물고기를 공급하는 창고 역할을 하는데, 우기에 강이나 호수가 범람하면 물고기가 곳곳으로 흘러들어 작은 호수나 집 근처 웅덩이에서도 물고기가 잘 잡힌다. 그러나, 올해는 메콩강 상류로부터 흘러내리는 수량이 충분하지 않았고 비가 늦게 내리는 바람에 메콩강 물이 톤레삽 호수로 역류해 들어가는 시기가 늦어졌다고 한다. 벌써부터 어획량이 감소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어젯밤 우리 집 마당에 무릎까지 물이 찼어요. 방으로 물이 들어올까 봐 잠을 잘 못 잤어요. 물이 다 빠져서 지금은 괜찮아요.”

아침에 출근한 직원이 한 말이다. 한국 같으면 물난리가 난 셈인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프놈펜 같은 도시 지역에도 침수되는 곳이 있지만 지방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비가 많이 내리면 강변이나 호수 근처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높은 지대로 거처를 옮겨야 한다. 물이 다 빠질 때까지 몇 달을 기다려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자신들이 수해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가 많이 내리면 더 좋아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 한강우 한국어전문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