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캄보디아 개미

기사입력 : 2013년 06월 18일

개미집

라틴아메리카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마르케스)의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은 전쟁을 위한 전쟁과 무위한 일상, 극단의 관능에 집착하며 오로지 고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 생애를 바친다. 공허한 일탈에 탐닉할수록 그들은 더욱 깊은 고독의 수렁으로 빠져드는데, 유일하게 진실한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아이가 개미밥이 되는 것으로 가문은 종말을 고한다.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난 간난아이의 시체가 거대한 개미떼에 둘러싸여 마당 한구석으로 끌려가는 마술적인 대목이 개미왕국 캄보디아에서 사노라니 논픽션처럼 다가왔다.

전체 개미의 4분의 3이 서식하는 열대지방에서 개미에게 시달려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드물 터이다. 먹거리 기척만 있으면 영락없이 몰려드는 개미떼에 여기저기 음식 흔적을 남기고 다니는 인사는 우리집안에서 ‘용서받지 못할 자’로 낙인찍힌다. 개미 중에 꿀을 잔뜩 먹어 포도알처럼 부풀린 배 속에 저장했다가 굶주린 동료에게 토해주는 꿀단지 개미가 있다는 얘기에, 달달한 음식을 먹은 후에는 양치질은 물론 입술주변까지 살뜰하게 씻게 되었다. 자칫 방심했다가는 꿀단지로 착각한 개미떼에게 입술을 공략당하고 말지 싶어서다.(언감생심!)

인간이 지구에 나타난 것은 겨우 3백만 년 전인데 비해 개미는 1억 년 전부터 출현하기 시작했다. 사막에서 북극에 이르기까지 1경(京)마리의 개미가 분포되어 있고 그 몸무게를 모두 합하면 전 인류의 몸무게 보다 무겁다고 한다. 개미가 아닌 인간이 과연 세계의 지배자인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개미는 페로몬이라는 독특한 호르몬으로 교신한다. 생존이나 감정에 대한 정보가 자기 몸 내부 순환을 거쳐 다른 개미들의 몸 안으로 퍼져나가 한 마리의 기분을 수백만의 개미집단이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개미 각각은 별개의 생명을 지닌 개체지만 페로몬을 통해 군락전체가 하나의 개체처럼 행동하는 초유기체(super-organism)적 존재로 여기는 과학자도 있다. 캄보디아에 사는 바퀴벌레나 도마뱀 따위가 그렇듯이 사람도 죽어 스러지면 득달같이 개미군단이 등장할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우리는 이미 초유기체인 캄보디아 개미에게 산 채로 먹혀 페로몬으로 촘촘히 얽힌 거대한 몸 안에서 싱싱한 음식으로 자진사육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진다면, 비약이 너무 심한 것일까?

먼 과거에는 인류도 개미와 마찬가지로 사랑의 유혹이나 적대적 공포 같은 메시지를 페로몬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개미와 달리 인류는 작위적인 통제로 본성의 향기를 감추는, ‘시침 뚝 떼는’ 방향으로 진화함으로써 진정성에 대한 회의와 고독의 형벌을 짊어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동하는 개미행렬은 멈춤이 없다. 우리는 잡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부산을 떨기도 하지만, 개미가 열심인 것은 잡념 따위가 없어서가 아닐까. /나순(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