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하 작가의 서평]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기사입력 : 2025년 07월 18일

9788901276533

프놈펜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예술을 직접 체험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다양한 전시회가 수시로 열리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까이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기회를 얻기가 어려워 이곳 생활에 살짝 회의와 불만족이 스며들기 시작하던 참에 이 책을 만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실제로 눈앞에서 예술 작품을 마주할 때의 전율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책장을 넘기는 동안 마치 저자와 함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천천히 거닐며, 작품 앞에 멈춰 서고, 함께 사유하고 감상을 나누는 듯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원제는 <All the Beauty in the World>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담아낸 제목이다. 반면 한국어판 제목은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로 원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다소 소박하고 친근한 제목이 2023년 한국에서 발간된 후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데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미술관 중 하나로, 규모는 뉴욕 평균 크기의 아파트 약 3,000개를 합친 정도라 하니 실로 어마어마하다. 1870년 설립되어 현재 약 200만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저자 패트릭 브링글리는 이곳에서 10년간 경비원으로 일하며 겪은 경험을 회고록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는 미술관의 방대한 예술 작품들과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예술의 힘과 아름다움을 조명한다.

책은 르네상스 시대 북유럽 회화의 걸작으로 불리는 피터르 브뤼헬의 <곡물수확>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예술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16세기 미술은 보통 종교, 신화, 왕족 등을 주제로 삼았지만, 브뤼헬은 가난한 농민들의 순박한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처럼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려는 용기, 당시 통념에 대한 의도적인 거부, 그리고 인간 삶의 진실을 탐구하려는 끈질긴 태도야말로 예술가다운 특징이 아닐까?

그렇다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그림의 주제는 무엇일까? 바로 예수를 다룬 그림들이다. 저자가 꼽은 가장 슬픈 그림은 베르나르도 다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늘어진 예수, 그 아래에서 지쳐 있는 마리아와 요한의 모습은 죽음이라는 거대한 단호함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미술관 내에서 가장 호화롭고 거대한 공간은 이집트관으로, 약 2만 6천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3,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들만의 미학을 정립해 온 이집트 예술 작품들은 먼 옛날 실재했던 신비로운 문화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시간을 원과 같이 순환하는 거라 믿었던 이집트인들은 그들이 남긴 다양한 예술작품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영향을 끼치며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다.

흔히 우리는 예술가란 신의 축복을 받은 천재라고 믿는다. 그러나 미켈란젤로의 삶은 그것이 잘못된 편견임을 보여준다. 그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완성하기 위해 570일 동안 고개를 90도 각도로 젖히고 팔을 수직으로 뻗어 고행과도 같은 작업을 계속했다. 무려 430명의 인물을 그리는 동안, 그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불평을 소네트로 남겼다. 그렇게 태어난 위대한 천장화는 무한한 근면성과 고통 없이 위대한 예술은 탄생할 수 없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저자는 이처럼 유명한 예술 작품 외에도, 사진, 악기, 권총, 퀼트 등 예술의 경계를 넓히는 다양한 소장품들에 주목한다. 또 스스로를 ‘보안 예술가’라 부르는 동료 경비원들을 포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 시선은 따뜻하고 섬세하다.그 외에도 미술품 도난 사건, 사후에 전 재산을 미술관에 기부한 제이콥 S. 로저스의 이야기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책에 실려 있다. 특히, 책에 실린 QR코드를 통해 본문에 등장하는 작품들을 직접 사진으로 감상할 수 있는 별책부록은 독자의 몰입을 돕는다. 저자의 감상을 따라가면서 예술 작품을 접하다 보면 어느새 가슴 가득 감동이 차오른다.

한 경비원이 관람객들에게 남긴 조언이 가슴에 남는다. 예술품에 대해 배우려 하지 말고, 예술품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예술을 향한 여정은 정답을 찾는 길이 아니다. 그 지극한 아름다움의 세계를 향해 우리 내면의 닫혀있는 방을 하나씩 열어가는 과정이다. 어떤 날은 한 곡의 음악이, 어떤 순간은 한 편의 시가, 그리고 문득 마주친 한 점의 그림이 그 지극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붙잡고, 어루만지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건네준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은가?

이 책이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감각과 감정을 일깨워 아름다운 예술의 세계로 인도하는 가이드가 될 수 있기를…

 

글 이미하
- <오십, 질문을 시작하다>의 저자
- 클래식 북스 북마스터 8년
- 다수의 온·오프라인 책모임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