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더 알아보기] 제108화 “썸뎃”이라 불리는 최고 통치자 그룹

기사입력 : 2023년 01월 21일

“썸뎃(Samdech)”은 오늘날 캄보디아 국왕이 국가에 상당하게 공헌한 개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명예를 수반하는 작위이자 칭호이다. 이 말은 “쓰닷(의미: King)”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됨에 따라 작위를 부여받은 범인에게는 왕족에 준하는 최고의 작위이다. 영어로 “Lord”라고 번역되니까 한국어로 “각하”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은 대통령에 준하는 고위관료뿐만 아니라 장관이나 비정치인에게도 부여되어서 “각하”라고 번역하기도 좀 어색하다.

또한 “썸뎃”과 더불어 수여된 개인의 지위나 업적과 관계있는 수식어구가 장황하게 따라붙는 것도 일반적이다. 훈센 총리의 경우에 “썸뎃 아께아 머하 쎄나 퍼떠이 떼쪼 훈센(Samdech Akka Moha Sena Padei Techo Hun Sen)”이다. 도대체 뭐지 싶어서 사전을 뒤지며 국왕이 친히 하사하신 문구를 번역하겠다고 애를 쓰다가 발라이-산스크리트어의 심오한 세계에 빠지면 날 새는 줄 모른다. 그래서 이런 문구가 한 줄이상 포진한 크메르어 문장을 번역할 때면 대통령제 국가와는 다른 왕국적 문화로 치부해서 ‘훈센 총리’라고 짧게 번역한다.

“썸뎃”이라는 칭호는 역사적으로 왕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부여되어 사용됐다. 그래서 “쓰닷”을 “왕중의 왕(Supreme king)”이라 칭한다면 “썸뎃”은 보통의 “왕”이나 그의 부인, “왕자”와 “공주”를 부르는 말이었다. 따라서 캄보디아 왕국의 왕 씨는 노로돔 계열과 시쏘왓 계열인 만큼 왕족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썸뎃”을 붙여 부를 근거는 없다. 그런데 노로돔 시하누크 선왕은 1960년대에 총리직을 충직하게 수행했던 뻰놋(Penn Nouth; 1906-1985), 녁띠울롱(Nhiek Tioulong; 1908-1996), 짜우싸엔꼬썰춤(Chau SenCocsalChhum; 1905-2009), 손산(Son Sann; 1911-2000)에게 “썸뎃” 칭호를 수여했다.

108-01▲ 1991년 파리평화회담 이후 입헌군주국의 부활을 축하하며 귀환하는 시하누크 선왕과 훈센 총리

그러다가 론놀 총리가 일으킨 쿠데타로 인해서 노로돔 시하누크 선왕은 왕정제 폐지를 겪으며 국외로 떠돌았고, 재기를 노리고 연합했던 크메르루즈의 집권기에는 가택연금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다행히 베트남 괴뢰정부 수반으로 등극한 헹삼린, 찌아씸, 훈센의 3인방 덕분에 1993년에 입헌군주국으로 재기할 수 있었으니 그들에게도 “썸뎃” 칭호를 남발했다. 이때까지도 “썸뎃”이 수여된 정황은 왕정제를 공고히 하고 왕권을 회복하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풀려버린 빗장은 영문도 모르게 갈지자를 그리면서 “썸뎃”의 문호는 넓어지고 있다. 캄보디아의 국왕은 통치자이되 통치는 할 수 없다는 헌법 조항으로 보듯이 노로돔 시하모니 현 국왕이 왕좌를 지키고 있어도 실권의 주체는 정부 여당이자 훈센 총리와 주변 세력일 것이다. 그러니 부군께서 ‘왕(썸뎃)’으로 불리는데 총리의 부인이라고 해서 ‘록쫌띠우(귀부인)’로 만족해선 안 되지 싶던지 2013년에는 분라니 여사도 “썸뎃”의 칭호를 부여받았다.

108-02▲ 2018년 국회 개회식 장면에서 오른쪽부터 썸뎃으로 불리는 훈센 총리, 써켕 장관, 헹삼린 의장

이후부터 일개 관리에 불과한 분들까지 “썸뎃”이 부여되는 마당이니 과연 일반인들이 “썸뎃”의 존귀성을 얼마나 인정할까? 2015년에 싸이춤 상원의장과 써켕 내무부 장관이 “썸뎃”이 되고나서 다음해에 모든 언론매체가 “썸뎃”의 칭호와 미사어구를 완전하게 쓰지 않으면 정부의 제재를 당할 것이라는 뉴스가 보도됐다. 당시 정보부는 대략 3시간의 회의에서 기자들에게 캄보디아의 최고 지도자들을 존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거의 한 줄에 육박하는 칭호와 미사어구이지만 기사의 첫머리에서 한 번이라도 꼭 명시하라고 당부했다. 이어 2017년에는 띠어반 국방부 장관과 쏙안 각료회의 장관도 자연스럽게 “썸뎃”으로 등극했다.

한편, 최근에는 아무 소속이나 지위도 없는 싸오띠(Sao Ty) 여사께서 “썸뎃”이 되셨다. 2020년 보도자료는 “그녀가 불교 발전에 기여하고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서 빈곤층과 노숙자를 지원하는 데 도움을 줌”에 따라 수여됐다고 전했다. “썸뎃”과 함께 수여된 미사어구는 “톰마위쏫타 웡싸”로 “위대한 담마의 여신”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실은 그녀도 분라니 여사와 다를 바 없이 헹삼린 국회의장의 아내로서 남편이 “썸뎃”인데 부창부수라는 입장인 듯하다.

108-03▲ 썸뎃 꽁썸얼 궁내부 장관으로부터 “썸뎃” 작위를 수여받는 싸오띠 여사와 옆에서 남편으로 동석한 썸뎃 헹삼린 국회의장

 

80-이영심

글 이영심

왕립프놈펜대학교 한국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