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더 알아보기] 제62화 쁘레아위히어 사원과 주변지역은 캄보디아 땅!

기사입력 : 2021년 07월 02일

3252_3890_5838▲ 덩라엑 산 절벽의 정상에 기다랗게 자리 잡은 쁘레아위히어 사원 단지의 모습

2009년7월, 처음 캄보디아에 KOICA 봉사단원으로 왔을 때부터 쁘레아위히어 사원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파견기간 동안에 꼭 한번 다녀가고픈 대표적인 유적지였다. 캄보디아의 쁘레아위히어는 한국의 독도라는 컨셉으로 조국에 대한 우국충정과 여행자의 감성이 맞닿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의 매스컴에서는 태국과의 총격전 소식을 보도했던 만큼 KOICA 현지 사무소는 봉사단원의 안전을 고려하여 방문을 엄격히 금지했다. 이미 다녀간 용감한 여행자들도 블로그마다 총과 박격포로 무장한 군인들이 순시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노출시켰고, 결국에는 섣부르게 행선지를 잡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쁘레아위히어 사원은 크메르제국 9세기초에 건축을 시작해서 대부분은 수리야바르만 1세(통치: 1006-1050AD)와 2세(통치: 1113-1150) 왕대에 완성됐으며 시바신에게 봉헌된 힌두교 사원이다. 쁘레아위히어주 덩라엑 산(높이 525m) 절벽의 정상에 위치하며, 사원 단지는 800m의 능선을 따라 기다랗게 분포한다. 1962년에 영유권 관련으로 태국과 캄보디아 간의 오랜 분쟁 끝에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결로 이 사원과 주변지역은 캄보디아령으로 인정됐다. 그렇지만 주변지역 국경선에 대해서 뚜렷한 판정이 없던 바 양국은 각자 자신의 영토를 다르게 인식하면서 분쟁의 불씨는 여전했다.

이처럼 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단초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중엽 크메르왕국은 태국과 베트남의 공동속국으로 전락하면서 북부지역 대부분의 땅을 태국에 할양한 신세였다. 때마침 베트남과 태국 사이에서 완충지를 모색하던 프랑스제국에 식민지를 자처했고, 이를 계기로 캄보디아는 쪼그라들었던 영토를 다소나마 수복할 수 있었다. 특히 쁘레아위히어는 1904년에 프랑스와 태국 간에 체결된 국경조약에 따라 캄보디아의 영토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 프랑스와 태국은 각각 자체적으로 측량한 경계를 토대로 지도를 다르게 제작했고, 캄보디아는 프랑스측 지도를 토대로 영유권 지켜왔다.

2007년에 캄보디아는 쁘레아위히어 사원의 가치와 보존의 필요성에 따라 유네스코(UNESCO)에 등재를 추진하는데, 이때 양국은 주변지역 국경선에 대한 이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2008년에 쁘레아위히어 사원은 캄보디아의 유산으로 최종 등재됐고, 다음해 4월과 2011년4월에 양국 군대는 결국 총격전을 벌였으며 국가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잇따랐다. 이에 더 큰 싸움을 우려한 캄보디아가 분쟁종식을 위해 ICJ에 제소했고, 2013년11월에 “쁘레아위히어 사원의 주변 땅도 캄보디아의 소유로 인정”하는 판결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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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색은 태국 측이 주장하는 국경선이고 초록색은 캄보디아 측이 주장하는 국경선이다.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ICJ) 판결은 쁘레아위히어 사원 주변의 양국 간 국경선을 판시하지 않았는데, 2013년11월에는 “주변 땅에 대한 주권이 캄보디아에 있다”고 최종 판결했다.

그즈음 태국의 정치상황은 군사 쿠데타로 불안정했지만, 양국은 평화유지를 약속하고 태국 군대는 새로 설정된 국경까지 군대를 철수하기로 동의했다. 그러나 2014년 10월 또다시 교전이 발생함으로써 캄보디아군 병사 2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3년 ICJ의 판결로 큰 쟁점 중 하나가 해결됐고 양국의 갈등의 정도도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지만, 판결 내용의 이행을 포함해서 국경 획정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지금까지는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캄보디아가 다소 유리했던 것 같은데 근본적으로는 양국이 지향하는 대화와 합의로 자체적인 결실을 점차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지난 6월15일은 ICJ가 쁘레아위히어 사원과 주변지역의 영유권을 캄보디아에 있다고 판결한 58주년이 되는 날이고, 7월7일은 UNESCO 등재 12주년이 되는 날이다. 캄보디아 정부는 이러한 날들을 기념해서 젊은 세대와 어린이들이 역사를 열심히 배우고 기념식에도 매년 참석함으로써 국가적 가치와 자부심에 귀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관련해서 주변국으로부터의 침략과 침탈의 역사까지 모두 기억하고 전체 역사를 반추함으로써 캄보디아의 문화와 유산이 미래 세대까지 오롯이 유지 존속되도록 힘쓸 것을 덧붙였다./왕립프놈펜대학교 한국어학과 이영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