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달콤한 식탁

기사입력 : 2017년 09월 29일

‘꿀꿀’은 휴대폰 속 남편의 닉네임이다. 조금 낯간지럽긴 하지만 아바(ABBA)의 노래 ‘Honey, Honey’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건 물론 사이가 좋을 때의 의미이고 수가 틀리면 바로 돼지 소리로 전락한다. 허니Honey뿐만 아니라 슈가Sugar, 스위트Sweet, 연인에 대한 대부분의 호칭은 단맛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 ‘달콤한 첫 키스의 추억’ 같은 문구에 잔뜩 기대했다가 그 찝찔한 맛에 한 번씩 실망했겠지만, 우리나라 말도 마찬가지다. 감미롭다, 달달하다, 달착지근하다…, 사랑스런 표현엔 단맛이 단골이다. 그만큼 단맛은 인간에게 매혹적이다.

사는 게 뭘까 싶은 공허함이나 우울감은 대개 탄수화물부족현상이라고 한다. 당분은 신체가동의 원동력일뿐더러 피로회복과 스트레스해소에도 그만이다. “인도에서 자라는 갈대는 벌의 도움 없이도 꿀을 만들어낸다”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대가 인더스강 유역에서 사탕수수를 발견하고 전한 내용이다. 신들의 식량이라 불릴 만큼 귀한 꿀 대신 설탕이 인간의 식탁에 오르게 된 건 전쟁을 통해서다. 이슬람 제국에서 유럽을 거쳐 현대 미국에 이르기까지 무력을 동원한 찬탈과 노동 착취를 통해 세계의 패권이 옮겨갈 때마다 승자들은 어김없이 설탕을 장악했다. 17세기 전만 해도 설탕은 귀족의 사치품이었다. 영국에서는 헨리 8세 때 처음 설탕을 접했는데 설탕을 어찌나 좋아했는지 각종 음식은 물론 와인에까지 넣어먹었다. 미모의 완성은 고운 잇속이기 마련인데 이 시절만큼은 썩은 이를 드러내는 게 부유함의 상징이었다. 설탕을 입에 달고 산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설탕 소비량은 지난 500년 동안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설탕은 우리 몸의 뛰어난 에너지원이지만 많이 먹으면 설탕 중독에 빠질 수 있다. 단맛은 뇌 내 쾌락 중추를 자극해 기분을 상승시키는 세로토닌을 분비시키는데, 이로 인해 점점 강한 단맛에 탐닉하게 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21세기 신종 전염병으로 규정했다. 비만의 75%가 탄수화물중독증이라고 한다. 뉴욕 포스트의 리엄 더프티 기자가 설탕을 니코틴이나 헤로인 이상의 중독성을 가진 ‘우리 세대 제1의 살인물질’로 고발한바 있다. 음식을 해먹을 시간도 없고 양질의 음식을 사먹을 경제력도 없을뿐더러 영양균형에 대한 변별력마저 부족한 사람들에겐 빵, 과자, 청량음료, 아이스크림 같이 당 지수만 높은 패스트푸드 외에 대안이 없는 게 현실이다. 불과 5세기 사이에 설탕과용이 빈곤과 무지의 상징이 돼버렸다.

캄보디아에 처음 왔을 때 어릴 적 간식거리였던 사탕수수(단수수)와 석류를 보고 반가웠는데 어느덧 천연주스는 탄산음료에 밀리고 곳곳에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섰다. 단맛에 길들여진 현지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인지 이곳 한국식당의 음식도 덩달아 당도가 세지는 느낌이다. 장아찌며 불고기며 김치며 찌개까지 가미가 지나쳐 하나같이 들큼한 게 우리 음식 고유의 풍미를 찾기 힘들다. 단맛은 개운함과는 거리가 멀어서인지 칼칼한 맛이 그립다./나순(건축사, UDD건설 naarc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