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 칼럼] 영부인

기사입력 : 2016년 03월 03일

나도 한 때 ‘영부인’을 꿈꾼 적이 있다. 가수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제5공화국이 막 들어서려던 때, <순자야 문 열어라>는 가요가 방송을 타다 갑자기 사라졌다. 영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자가 같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된 것이다. 한창 청춘기를 구가하던 당시, <순이 생각>, <순아 단둘이 살자> 등 내 함자(?)와 같은 노래가 유행했다. 이름이 나오는 소절을 연달아 부르며 수작을 거는 남성동포가 더러 있었는데, 그 유치함에 치를 떨며 기필코 영부인이 돼서 모조리 금지시키고야 말리라 결심했었다. (그 꿈은 예전에 버렸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영부인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지만 요즘은 거의 ‘First Lady’를 뜻하는 ‘대통령 부인’으로 통용된다. 캄보디아 영부인의 입김도 만만치 않은지, 지난 1월 5일 준공한 러시아대로의 고가도로 이름을 훈센총리부부 결혼기념일인 1월 5일(쁘람 마까라)로 명명할 예정이라고 한다. 크메르 루즈 시대를 함께 극복했다는 의미에서일까, 한국 군정시절 ‘3‧1 고가도로’니 ‘5‧16 광장’이니 붙였던 것처럼 캄보디아도 역사적인 날짜를 따서 명명하는 모양이다. 어느 나라나 군사문화의 한계는 어쩔 수 없다. 아전인수 격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도 그렇고. 이렇듯 영부인 자리란 참 묘해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남자지만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중국에서는 영어 ‘First Lady’를 중국식으로 옮겨 영부인을 ‘제1부인’이라 부른다. 현 국가주석 시진핑의 부인 펑리위안이 개방개혁이후 전례 없이 주목받고 있다. 중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국민가수일뿐더러 매력적인 매너와 자태로 세계인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펑리위안이 자신의 유명세로 남편이 빛을 잃을까 염려해 시진핑 미국 방문길에 동행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월스트리트(WSJ) 저널의 분석이 나올 정도다. “여자는 자기 자신만 관리하면 된다. 똑똑한 남자는 관리할 필요가 없고, 멍청한 남자는 관리해도 소용없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남자는 관리하지 않아도 되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는 관리할 자격이 없다.”며 영부인 따위 초연한 듯하지만, 푸젠성 샤먼시 부시장으로 무명이던 시진핑을 출세시킨 장본인이라는 정가 소문이 무성하다.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의 전형인 영부인 자리를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으로 뒤집었다고나 할까.

영부인으로 성에 안차 대통령에 도전하는 여성도 있다. 힐러리 클린턴. 이번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두 번째 출사표를 냈다.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칭하며 진보 진영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를 맞아 엎치락뒤치락 접전을 벌이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릴 분위기가 적잖게 감지된다. 유세장에서 열변을 토하는 힐러리 뒤로 훤칠한 백발의 노신사가 유난히 시선을 끈다. ‘First Lady’의 상대어는 ‘First Gentleman’이다. 빌 클린턴이 과연 ‘First Gentleman’이 될 수 있을까? / 나 순(건축사, 메종루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