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역사탐방] 앙코르 문명의 종말

기사입력 : 2014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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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의 고전기 영화는 13세기 초반에 끝나게 되고 새로운 세력, 새로운 왕조가 부상하게 된다. 앙코르 왕조는 자야바르만 7세 이후 급속한 쇠퇴경향을 보이고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의 경향이 나타난다. 버마의 파간, 베트남의 참파 등 고전기 국가가 쇠퇴한다. 그리고 이를 뒤이어 북베트남의 진왕조가 대월국을 멸망시키고 등장했으며, 태국에서는 수코타이 왕조와 치앙마이 왕조가 들어섰다. 그리고 1350년에는 아유타야 왕조가 신흥 각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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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왕조가 존립했던 시기는 세계사의 흐름에서 보면 중세기에 위치하지만 크메르 건축상의 그 거대성, 종교중심의 건축, 종교사상에 얽매인 형식 등으로 볼 때 고대건축의 범주에 속한다. 13세기 이후부터 원나라의 동남아시아 원정, 해양을 통해 물밀 듯 밀려들어온 이슬람의 유입, 내륙으로 밀려든 소승불교,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대륙 발견 등과 새로운 역사의 흐름이 전개되어 중세기를 이끌어 나갈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는 물결이 일어난다.

이런 가운데 앙코르 왕조는 참파국과 아유타야 왕국으로부터 협공을 받으면서 국력이 급속도로 약해지기 시작하여 결국 역사적인 운명을 다하게 된다. 참파국의 참족은 베트남의 월족이 중국 대륙에서 남하하면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현재에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흩어져 거주하는 10만 명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하였으나 당시에는 메콩 델타 하류를 차지하기 위해 앙코르와 각축을 벌였던 경쟁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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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타이족의 성장에 비례하여 앙코르 왕조의 국력은 후퇴하기 시작한다. 앙코르 왓 회랑에 야만족으로 묘사되었던 타이족이 1238년 서쪽 변방에서 수코타이 왕국을 세운다. 타이족의 독립은 점령지에서 충원되던 제국에 인적, 재정적 손실을 가져왔다. 그리고 1351년경 그 뒤를 이어 들어선 아유타야 왕국이 말레이 반도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대국가로 성장한 후에 1431년 앙코르 왕도를 공격하여 찬란했던 앙코르 문명에 종말을 가져왔다.

아유타야의 왕국의 왕은 앙코르 왕조의 왕을 죽이고 자신의 아들을 점령지의 통치자로 임명했다. 그리고 많은 문화재, 무희인 압사라, 대신들과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민속무용인 압사라 춤은 이후에 태국의 전통무용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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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는 왕자 폰헤야 얏(뽀니여얏)이 장군, 병사들을 소집하여 식민 통치자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수리시설이 파괴되어 도성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서 외세의 침략의 위험이 덜한 스라이 산토르 지역의 바산에 임시 수도를 세운다. 그리고 1434년에는 톤레삽 호수와 메콩강이 만나는 프놈으로 왕도를 다시 이전하였다. 그러나 앙코르 왕조는 도성을 포기하면서 인도에서 기원한 신왕사상의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남아 있는 지배층도 국민들로부터 유리되어 과거 대제국으로 복귀하려던 꿈은 실패하였다. 왕도의 포기는 결국 지배계층의 문화, 사원, 힌두 사상, 산스크리트어를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 사라지게 만들었고 앙코르 왕도는 과거의 이상으로만 남게되었다. / 글 : 박근태(왕립프놈펜대학 크메르어문학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