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역사탐방] 첸라 왕국 (진랍)

기사입력 : 2014년 02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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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중엽 메콩강 삼각주 지역을 중심으로 인도와 중국 간의 해상무역을 통해 번성하던 푸난 왕국은 농업기술의 발달과 비단길의 개통으로 쇠약해지면서 속국이었던 첸라 왕국에게 병합된다.

초기 캄보디아의 역사는 주로 비문이나 중국의 자료에 많이 나타나는데 6세기 말부터 푸난 왕국에 대한 기록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이 기간에 큰 지배세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호족세력으로 분리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첸라 왕국은 중앙집권적인 통치체계를 가지고 전 지역을 다스리는 통일된 왕조의 형태가 아니라 캄보디아 영토 내의 여러 소규모 국가들을 대표하여 통칭하는 의미로서의 왕국이었다. 첸라 왕국의 수도는 현재의 깜뽕톰 북쪽의 ‘썸보 쁘라이 꼭’ 지역으로 추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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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에서 발견된 비문을 통해서 중국의 기록에서 사라졌던 캄보디아의 역사적 기록이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 이 비문에 나타난 첸라 왕국의 왕인 바바바르만은 푸난 왕국의 후손으로 크메르 부족장의 딸과 결혼하여 왕국으로 발전시켰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첸라 왕국은 바바바르만과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서 현재의 캄보디아에 버금가는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시켰는데 비문에 의하면 바바바르만에 이은 마헨드라바르만은 현재의 태국의 북동부까지 세력을 확장하였고 현재의 베트남인 참파 왕국과도 교류하였으며, 그를 이어 이사나바르만이 계승하였는데 그는 태국의 연안지역에서 베트남 지역의 해안까지 세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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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나바르만이 죽은 뒤 첸라 왕국은 다시 소규모 부족국가로 분열되고 그 후 자야바르만 1세가 새로 ‘악윰’을 수도로 정한다. 자야바르만 1세가 캄보디아 중부와 북서부 지역을 걸쳐 세력을 확장하여 번영하면서 첸라 왕국은 다시 내륙 첸라(육진랍)와 수역 첸라(수진랍)으로 나뉘어지게된다. 수역 첸라는 톤레삽 호수를 포함하는 현재의 캄보디아 영역과 남부 베트남의 메콩 하류까지가 물이 많은 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내륙 첸라는 그 이북인 현 라오스 지역까지의 물이 적고 대신 삼림과 평원이 인상적인 지역을 가리킨다. 첸라 왕국의 사람들은 후에 여러 부족국가에서 한 통치자에 의해 단일 왕국이 될 때까지 푸난의 전통을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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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역 첸라는 메콩강 하류에 위치하며 계속되는 해상무역의 쇠퇴와 함께 기울어졌던 반면에 내륙 첸라는 풍부한 내륙의 농경지대와 인도의 선진문명을 받은 지배계급들이 유입되면서 점차 발달하여 강대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8세기 말에 자야바르만 2세가 메콩강 하류부터 시작하여 내륙지역을 거쳐 세력을 확장하며 국가를 통일하여 앙코르 제국의 기반을 만들어놓는다. / 박근태(왕립프놈펜대학교 크메르어문학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