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우칼럼] 캄보디아 사람들과 휴대폰

기사입력 : 2013년 12월 17일

아는 캄보디아 사람과 통화를 하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영 연결이 되지 않았다. 열 번 가까이 번호판을 누른 끝에 어렵사리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용건을 끝내고 나서 왜 그렇게 전화가 안 되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건 전화번호가 좀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는 다음에 전화할 때 이 전화가 안 되면 다른 번호로 하라고 새로운 핸드폰 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통화를 끝내고 그 사람 명함을 찾아서 자세히 살펴보니 무선전화 번호가 두 개나 적혀 있었다. 핸드폰을 두 대 쓰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적인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캄보디아 사람들 중에서 핸드폰을 두 개씩 가지고 다니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무리 잘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특별한 목적이 없는 한 핸드폰은 두 대씩 소지한 한국 사람은 거의 없다. 통신 기반이나 전화기 생산 기술이나 전화 이용면에서 세계 최강자의 위치에 있는 한국이 그렇지 못한데 한국과 비교할 때 모든 면에서 걸음마 단계인 캄보디아가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은 상당히 부자이거나 남에게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나라의 통신 사정을 안 뒤에야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3,4년 전만 해도 시내 길가 곳곳에는 많은 전화 부스가 있었다. 유리면에 핸드폰 번호와 기본 통화료가 적힌 사람 키 정도의 박스에 사람이 하나 앉아 있는데, 돈을 내고 전화를 거는 사설 공중전화였다. 동전을 넣고 다이얼을 돌려서 전화를 거는 대신 이용자가 원하는 핸드폰을 사용해서 전화를 걸고 요금을 지불한다. 011, 012, 015, 016, 092 등 식별번호마다 여러 대의 전용 전화기(휴대폰)가 따로 있고 요금도 조금씩 다르다. 같은 식별번호끼리 통화를 하면 요금도 싸고 연결도 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요 몇 년 사이에 휴대폰 보급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길가의 전화박스는 거의 사라졌다.

캄보디아는 핸드폰이 주된 통신 수단이다. 집에 유선 전화를 놓은 사람은 거의 없고 가게나 사무실 같은 곳에서도 주로 무선 전화를 사용한다. 그래서 간판에 적혀 있는 연락처도 거의 핸드폰 번호다. 유선 통신에서 무선 통신으로 이동해 가는 게 일반적인 통신 발달의 단계지만 캄보디아는 한 단계 뛰어넘은 셈이다. 전화뿐만 아니라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옥상에서 안테나로 전파를 받아서 컴퓨터로 연결하는 무선 방식을 많이 쓰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전화를 사용하다 보면 짜증이 날 때가 많다. 잘 걸리지 않고 통화중에 끊기기 일쑤고 통화감이 나쁜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설비가 취약하고 운용 기술이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무선 전화 식별번호별 숫자를 보면 한국보다 훨씬 많다. 그만큼 여러 통신 업체가 난립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몇 십 분지 일도 안 되는 가입자를 가지고 여러 회사가 나누어 먹고 있으니 요금은 비싸지만 통화 품질은 엉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통신 환경이야 어떻든 지금 캄보디아의 핸드폰 보급률은 날이 갈수록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한국이나 마찬가지로 특히 젊은이들에게 그렇다. 아이폰은 이제 젊은이의 필수품이 되었다. 소리야 백화점 핸드폰 코너에 가면 새로 나온 제품을 보러 온 젊은이들로 늘 북적댄다. 핸드폰 하나 장만하는 것이, 더 좋은 아이폰으로 바꾸는 것이 그들의 간절한 소망임을 눈으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 한강우 한국어전문학교 교장